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으로 흑인 버락 오바마(47)가 당선됐다. 그의 이름 ‘버락’은 아프리카 이름이다. 오바마의 조상은 아프리카 케냐의 흑인이다. 미국 역사 232년 만에 처음으로 백인의 노예였던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보다 아프리카가 더 흥분하고 있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 이후 민주주의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여준 최대의 선거 기적이자 정치혁명이 아닐 수 없다.
1863년 흑인 노예해방을 선언한 에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을 반대했던 백인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1963년 약 30만의 군중이 모인 워싱턴광장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마틴 루터 킹 목사 또한 백인이 쏜 총탄에 쓰러졌다. 흑인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이 두 사람의 희생이 뿌린 결과이자 피와 슬픔으로 얼룩진 흑인 인권운동의 승리인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50년 동안 동서독의 냉전과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보다 더 공고했던 인종장벽을 붕괴시켰다. 그런 오바마가 한반도로 눈을 돌린다면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 폐물인 남북분단의 장벽도 무너뜨릴 수 있을까. 한반도에 ’철의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변화와 평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그 장막의 키는 과연 누가 쥐고 있는 걸까.
그 키는 분명 오바마에게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키의 사용방법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쥐고 있다. 오바마의 미국과 김정일의 북한은 지금 동병상린(同病常鱗)에 처해 있다. 미국과 북한이 모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신뢰의 위기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 파국 직전의 경제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 자본주의 체제와 수령주의 체제라는 체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 국제평화에 대한 위협의 존재로 경계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공통적이다. 그리고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점, 북미정상회담과 관계 정상화를 이뤄 경제안정과 체제유지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문제는 20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고 북한을 이끌어 온 김정일 위원장이 젊은 오바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혹시, 김 위원장은 과거 40대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 케네디의 리더십을 시험해 보기 위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이리 쿡, 저리 쿡 찔러’ 보듯이 오바마를 시험해보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또다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북미 직접 담판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대담한 결심’을 했는데, 이번에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들이 우려된다.
그러나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남북한 간에 아직 대화채널도 없는 상태에서 북미간의 직접대화로 핵문제와 관계 정상화가 예상보다 빨라진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외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미채널 구축을 위해 떠들고 있는 동안, 북한의 이근 미국국장은 뉴욕으로 들어가 미국 외교의 대부인 헨리 키신저를 만났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만사미통(萬事美通)의 외교정책’(모든 외교력을 미국에 집중시키면 한국, 중국, 일본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북한식 외교정책)을 펴면 한국은 다시 변방으로 밀려난다. 지금처럼 남북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오바마와 김정일이 만난다면 한반도에 평화는 오겠지만 그 평화는 완전한 평화, 영구평화가 아니라 불완전한 미완의 평화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외교적 시련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정전협정의 당사국에서 배제되는 한 순간의 이승만 정권의 외교적 실수로 분단 당사국인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분단외교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미국과 북한이 주도하는 정전협정의 주 당사국이 아니다. 또 다시 외교적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적인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창안해 내지 못하면 미국과 북한에게 한반도의 외교주권을 빼앗기는 이승만의 길을 답습할 지도 모른다. 오바마와 김정일의 회담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