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지탄받는 미국 월가(Wall Street)에서 내려오는 격언 중에 “황소 뿐 아니라 곰도 돈벌이가 되지만 돼지는 예외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증권시장이 활황인 경우를 황소에 빗대어 ‘bullish’라 하고 침체된 경우를 곰에 빗대어 ‘bearish’라 한다. 돼지(pig)는 영어에서 속어로 탐욕 또는 과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격언은 시장상황이 좋을 때는 물론 나쁠 때에도 수익을 올릴 기회가 있지만, 탐욕을 부리면 시황과 상관없이 돈을 벌기 어렵다는 뜻이다.
월가의 귀재, 아니 오마하의 현인(The Oracle of Omaha)이라 불리며 추앙받는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이 얼마 전 이런 격언과는 의미가 조금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기고에서 “나는 지금 전 재산을 털어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면서 미국의 미래를 사고 있다. 투자자들이여, 탐욕스러워져야 할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전 미국, 아니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버핏이 격언의 함의를 모를 리 없건만 왜 금기시되어 있는 탐욕을 적극 권장한 걸까?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Rich Dad, Poor Dad)’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Robert Kiyosaki)는 투자자의 유형을 7가지로 나눈 뒤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형으로 ‘냉소적 투자자’를 꼽았다. ‘냉소적 투자자’는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유형이다.
이들은 시황 호전이 예견돼 주식투자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도 지난 날 손실을 입었던 아픈 기억을 상기하며 두려움에 질려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변명거리로 ‘지금 투자하면 안되는 이유’를 스스로 마구 만들어내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투자에 나서게 되는데 스스로의 탐욕이 자신들을 눌러왔던 두려움을 넘어서는 때이다. ‘아직은 투자의 적기가 아니야’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다시피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자신만이 상대적으로 손해보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서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두려움이라는 최면을 깨뜨릴만한 탐욕이 생겨 소위 ‘묻지마’ 투자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식 투자에 발을 들인 이들은 시황 악화가 예견되어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때가 왔는데도 이번에는 거꾸로 ‘앞으로 주식시장이 호전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마구 만들어내면서 다시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손절매(損切賣)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이 주식을 파는 시점은 ‘이러다가 시장이 완전히 망가지는 건 아닌지’하는 두려움이 자신의 탐욕을 넘어서는 때이다.
기요사키는 이러한 냉소적 투자자들이 주가의 상투를 잡았다가 바닥에서 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흐름을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두려움과 탐욕이라는 감정에 의지하다 보니 주식을 사거나 팔 때에 다른 유형의 투자자들보다 항상 한 발 늦게 된다. 즉, 이들 냉소적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고 나면 더 이상 매입할 사람이 없어져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하고, 마찬가지로 이들이 주식을 팔고 나면 더 이상의 매도 주체가 없으므로 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탐욕과 두려움은 얼핏 보기에는 정반대의 심리현상인 듯하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식 투자든 부동산 투자든 재테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탐욕과 두려움 사이에서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버핏도 “시장이 탐욕으로 가득할 때에는 두려워하고, 시장이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에는 탐욕을 부려야 한다”는 투자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개미 투자자들이 버핏처럼 능동적으로 시장의 탐욕과 두려움을 거꾸로 이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최소한 시장의 비이성적인 움직임에 겁먹어 흔들리는 것만이라도 삼가고, 냉철한 판단으로 투자하기를 바란다.

/조기인 금융감독원 광주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