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모임에 초대받고 나간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치 얘기가 나왔다. 내가 정치인이다 보니, 최근 정치상황에 대한 나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경제가 갈수록 어렵고, 쇠고기 파동에 이어 쌀 직불금 문제 등으로 국민들이 짜증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한 참석자가 대뜸 나에게 “제 1야당이 어느 정당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민주당이죠”라고 답변했다.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정치하시는 분이 그렇게 민심을 모르십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당황스럽고 의아해서 “아니, 지금 대한민국 제 1야당이 민주당이 아니면 어느 정당이란 말입니까”라고 반박 겸 재차 내 의견을 말했다. 그가 “정말 모르시는군요”라고 말한 뒤 세상의 민심이라며 나에게 전한 말이다.
그는 “지금 국민들은 제 1야당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고, 제 2야당은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이고, 제 3야당은 민노당 강기갑 의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아예 야당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정국과 촛불집회에서는 단연 강기갑 의원이 제 1야당이었는데, 최근 두 현안이 사그라지면서 강기갑 의원이 조금 밀렸다고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참석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참석자들은 “의석수가 많다고 제 1야당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누가 잘 대변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첫째, 제 1야당에 대한 참석자들의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상식 간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고, 둘째, 원내의석 83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많은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제 3야당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최근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 1, 2, 3위를 휩쓸었고 민주당 정치인은 동메달감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이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그가 말한 민주당은 제 3야당에도 못 든다는 발언은 소수 의견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은 의석수에서는 한나라당 다음의 원내 제 2당이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에 있어서는 박근혜 의원, 김문수 지사, 강기갑 의원이라는 한 개인 정치인의 영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인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을 경우보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하는 비판에 국민들은 더 귀를 기울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이 한창일 때 광화문 촛불집회장을 당당히 활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인은 강기갑 의원이었지, 민주당 의원들이 아니었다. 83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시위대와 멀찌감치 떨어져 촛불의 곁불을 쬐거나 촛불시위 현장에 들어갔다가 멱살을 잡히는 창피를 당해야 했다.
어쩌다 민주개혁세력의 유일한 정통성을 갖는 민주당이 이렇게 됐을까. 민주당은 과거 야당이던 시절에는 국민과 함께 하는 제 1야당으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민주주의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 남북화해협력을 통한 통일세력의 대변자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 늘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런 민주당이 지금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민주당이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정당의 기본인 정체성 상실일 것이다. 둘째, 의원의 능력과 자질에 상관없이 민주당 간판만 들고 나오면 당선되는 지역주의 구조이다. 셋째, 정권재탈환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전략의 부재이다.
현재 민주당은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무엇을 위한 정당인가. 민주당의 기본 정책과 노선이 떠오르지 않는다. 민주당은 당장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국민은 다 아는데, 혹시 민주당 지도부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서 ‘제 1야당’도 아닌, 원내 2당의 알량한 권력에 취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대목이다.
/장성민〈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