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방 어느 대학, 시골 논밭 사이를 지나 산비탈에 아담하게 위치한 캠퍼스를 방문했다. 몇 가지 특색을 발견했다. 우선 건물들이 나지막해서 주변 산세나 경관과 잘 어울렸다. 학교 관계자들과 교정을 걸으면서 만난 학생이나 직원들의 표정도 매우 밝았고 인사도 잘 했다. 그냥 “안녕하세요!”가 아니고, “총장님, 오늘 넥타이 색깔이 가을 하늘과 잘 맞아요!” “이발 하셨네요? 헤어스타일이 멋지십니다.” 등등 자연스러운 인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학과의 명칭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이었다. 무얼 가르치고 배우는지 단박 알 수 있었다. 취업률도 아주 높았다. 비결을 물었더니 실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밝고 환하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잘하는 것도 비결 중 하나라고 한다. 인턴사원으로 4∼5개월 근무한 졸업예정자들이 회사에서 귀염을 받아 견습을 마치면 곧 취업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우리 동네 대학생들이 대기업이나 건실한 중소기업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 공무원시험이나 공기업 취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서류전형에서 많이 떨어지는데 지방대학, 더구나 전라도의 대학이라는 약점에다 대다수가 외국어실력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면접점수가 신통찮다는 것도 문제다. 면접관에게 적극적, 긍정적인 태도와 자신감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쩐지 주눅이 들어 보인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렇고 그런 별 볼일 없는 대학생’이라는 패배적 생각을 없애고 ‘우리도 뚝심 있는 기둥감’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에서 선호하는 사원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오면 일을 잘할 것이란 사고방식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조직의 결속에 앞장서는 사람 쪽으로 가고 있다. 우수 인재들은 소속감이 약하기 쉽다. 더 좋은 조건으로 유혹받고, 더 우수한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회사 떠날 궁리를 많이 한다. 같이 어울리기보다 혼자 잘난 척하기 십상인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남해안포럼은 우리 지역을 ‘버려진 땅’에서 ‘남겨둔 땅’으로 바꾸는 첫 디딤돌로 ‘신 발전지역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으면서 ‘무등아카데미’라는 ‘우리 아이들 제대로 키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목표는 Competence(실력), Character(품성), Commitment(헌신)의 역량을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자는 것이다.
매주 이틀씩 한 곳에 모여 45주 동안 문제 파악, 조사 기획 등 바로 회사에 투입해도 일을 척척할 수 있는 기업 실무와 소통과 발표력을 키우는 발성연습, 한·중·일 동남아 한자문화권과의 교류에 대비하는 한자교육에 집중했다. 120권의 고전 명작을 읽혀 교양을 쌓게 하고, 영아원·양로원 등 불우한 이들과 함께하고 환경 살리기에 동참하여 보다 나은 품성을 갖도록 노력했다.
성공한 기업가들을 모셔 특강을 실시했다. CEO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수요원들의 헌신이 눈에 돋보였다. 한달간 현장실습을 통해 직장인들이 갖춰야 할 상하관계와 시간관리능력도 배양시켰다. 3년 동안 이 과정을 마친 40여명은 어디에 내놔도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뚝심 인재’로 성장했다.
초·중·고·대학의 정규과정을 통해 기본적 역량을 갖춘 우리 아이들이 다른 지방대학은 물론 수도권 대학 졸업생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강한 자신감을 불어 넣는 노력을 제도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가, 대학 관계자들이 모양새 있는 틀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 제대로 키우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가르쳐서 얼마만큼의 뚝심을 쌓게 했다는 설명과 함께 이들이 회사에 들어가면 대들보 노릇을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발전도, 문화창달도, 사회적 통합도 결국 사람이 해낸다. 실력 있고 품성 바르고 헌신적인 아이들을 키워내면 우리 동네는 ‘버려진 땅’에서 ‘남겨둔 땅’으로 변화한다. 옛 어른들이 ‘농사 중에 제일 큰 농사는 자식농사’라 했던 말이 요즈음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정찬용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