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를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의 유형, 말하기 기법, 연설 등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대화나 연설, 설득, 유머, 토론 등에 관한 글이나 영상물, 책 등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 몸짓으로도 하고 옷차림이나 친절도 중요한 대화의 요소라는 구절을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눈에 확 띄는 문장이 있었다. “선물도 대화다! 선물이 대화라니?”였다.
‘선물도 대화’라는 구절이 약간 충격적이었다. 선물이 대화라면 나는 과연 대화에 성공한 사람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다. 아마도 성공적이지 못한 사람에 가까울 것 같다. 그동안 누구에게 선물을 주고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았을까? 주고 받은 선물은 또 무엇이었을까? 남에게 준 선물보다는 받은 선물이 더 많지 않았을까? 선물을 줄 때 흔쾌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체면상 형편에 비해 무리를 하지는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락가락했다. 몸짓, 표정이 대화란 주장에는 흔쾌히 동의했지만 ‘선물이 대화’라는 대목에선 선뜻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선물’이라는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뇌물’이란 그림자를 떼어놓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물과 뇌물의 명확한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선물(膳物)은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하는 행위 또는 그 물건을 뜻한다. 선사(善賜)란 존경, 친근, 애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남에게 주는 선물이다. 반면 뇌물(賂物)은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을 의미한다. 뇌물이란 상당한 직위를 가진 사람에게 은밀하게 건네는 대가성 돈이나 물건인 것이다.
그렇지만 선물과 뇌물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이 우리의 고민거리다. 정부가 고심 끝에 공직자에게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제공하면 뇌물, 어느 금액 이상의 선물은 뇌물, 이런 식으로 일방적 잣대를 만드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었다.
단지 금액이 선물과 뇌물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하면 고가의 선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주면 선물, 어떤 의도를 가졌다면 뇌물이란 식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같이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것을 어떻게 단순 논리로 환원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복숭아가 어찌나 맛있던지 혼자 먹기에는 아까웠다. 그래서 한 동네에 살던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가 한마디로 거절 당하고 말았다. 선물을 받은 것이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스승의 날, 아이의 손에 들려 보냈던 조그만 선물 꾸러미가 되돌아 왔을 때의 민망함이 다시 살아났다. 사회의 분위기가 험해지다 보니 가벼운 선물조차 뇌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뇌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 횡행해온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도 있다.
한가위가 다가왔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은 대목을 맞아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고 덩달아 택배 아저씨의 발걸음도 바쁘다. 때가 되었으니 의례적으로 하는 선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존경과 사랑, 관심 등을 담아 정성으로 선물을 보낸다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는 대화의 통로가 될 것이다.
선물은 액수에 상관없이 평상시 말하지 못했던 감사를 표현하고,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분들에게 예를 갖추는 일이다. 무엇보다 가까운 가족에게,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일이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대화가 된다. 진정 그렇다면 선물은 대화, 사랑의 대화가 된다.


/민혜숙 소설가·호남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