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달라도 정(情)은 통한다
2008년 08월 17일(일) 18:47 가가
인간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뜻을 전할 수 있다. 그래서 몸짓언어가 음성언어보다 더 솔직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번 여름에 그것을 몸소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 전에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몸짓언어로 웬만한 일을 해결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배경에는 한자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 한자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에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정은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일복지재단에서 주관하고 포스코와 사랑의 열매에서 후원하는 ‘아름다운 변화 프로젝트(BCP/Beautiful Change Project)’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양림교회를 중심으로 26명의 의료봉사단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특수학교 교사 3명과 서울에서 다일의료진 5명, 현지의 통역들이 협력한 5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의료봉사단이었다.
필리핀에서 소위 ‘언챙이’라고 하는 구순구개열 환자 30여명의 수술을 집도한 적이 있는 한 교수는 거울 속에 비친 아름답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서 함께 동행했다. 청룡부대 의무관 출신인 그 교수는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베트남 전쟁과 중동 건설이라는 두 축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이 한국전쟁을 기반으로 패전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쨌든 베트남에 빚지고 있다. 또한 광주의 양림동은 1900년대 초, 광주에 온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와 의료봉사, 사회복지 활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개화기 근대 유적지다. 유진벨 목사와 오웬 의사 등 여러 사람의 헌신에 의해 기독병원과 수피아 학교가 설립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 보육원이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외국 선교사와 봉사자들에게 빚이 있는 셈이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들에게도 빚진 마음이다.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심정으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여러분들이 모아 준 정성어린 학용품과 선물들이 수십 상자였다. 광주에서 떠난 26명의 대원들은 자비로 항공료를 부담했고 포스코에서는 현지에서 쓰는 약품과 통역, 구호물품을 준비해주었다. 다일복지재단에서는 인민위원회와 적십자사의 일정을 조절하고 전체 스케줄을 관리해 주었다.
각 일정마다 돕는 손길이 있어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3일 동안 연인원 1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했다. 한쪽에서는 10명의 의사와 3명의 간호사, 그리고 약국 팀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어린이 팀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주를 하고 춤도 추고 종이접기, 줄넘기, 부채 만들기, 팽이 만들기 등으로 분주했다. 함께 공을 차고 어울려 노는 것을 보니 말은 통하지 않아도 동심은 서로 잘 통했다.
붕따우 성 찌우덕 현의 특수학교에서는 대원들이 땀을 닦는 척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청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색깔에 따라 악보를 가르쳐주고 핸드 벨 시범을 보이게 했는데, 그곳의 교장 선생님도 연신 눈물을 닦았다. 또 그들에게 들리거나 말거나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우리 어린이 대원들을 보며 감동했다. 우리 품에 안기는 베트남 아이들의 앙상한 뼈마디에 다시 코끝이 시큰했다.
아이들은 얼굴 아래에 손가락을 꽃처럼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수화로 ‘깜언’이란다. 말하지 않아도 고맙다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 호치민의 외곽 빈홍화 마을에서 맹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소녀가 학용품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을 때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개업의들이 병원 문을 닫고, 가족과 식사할 틈도 없이 바쁜 대학병원 의사가 금싸라기 같은 휴가를 베트남 의료봉사에 사용했다. 하지만 사랑을 전하러 왔다가 더 많은 것, 정을 배우고 간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정이 흐르는 사회가 되기를 모두 함께 소망했다. 우리는 땀을 많이 흘렸지만 속으로는 땀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렸을 것이다.
/민혜숙 소설가·호남신학대 교수
그 전에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몸짓언어로 웬만한 일을 해결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배경에는 한자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 한자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에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정은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일복지재단에서 주관하고 포스코와 사랑의 열매에서 후원하는 ‘아름다운 변화 프로젝트(BCP/Beautiful Change Project)’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양림교회를 중심으로 26명의 의료봉사단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특수학교 교사 3명과 서울에서 다일의료진 5명, 현지의 통역들이 협력한 5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의료봉사단이었다.
필리핀에서 소위 ‘언챙이’라고 하는 구순구개열 환자 30여명의 수술을 집도한 적이 있는 한 교수는 거울 속에 비친 아름답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서 함께 동행했다. 청룡부대 의무관 출신인 그 교수는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베트남 전쟁과 중동 건설이라는 두 축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이 한국전쟁을 기반으로 패전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쨌든 베트남에 빚지고 있다. 또한 광주의 양림동은 1900년대 초, 광주에 온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와 의료봉사, 사회복지 활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개화기 근대 유적지다. 유진벨 목사와 오웬 의사 등 여러 사람의 헌신에 의해 기독병원과 수피아 학교가 설립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 보육원이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외국 선교사와 봉사자들에게 빚이 있는 셈이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들에게도 빚진 마음이다.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심정으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여러분들이 모아 준 정성어린 학용품과 선물들이 수십 상자였다. 광주에서 떠난 26명의 대원들은 자비로 항공료를 부담했고 포스코에서는 현지에서 쓰는 약품과 통역, 구호물품을 준비해주었다. 다일복지재단에서는 인민위원회와 적십자사의 일정을 조절하고 전체 스케줄을 관리해 주었다.
각 일정마다 돕는 손길이 있어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3일 동안 연인원 1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했다. 한쪽에서는 10명의 의사와 3명의 간호사, 그리고 약국 팀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어린이 팀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주를 하고 춤도 추고 종이접기, 줄넘기, 부채 만들기, 팽이 만들기 등으로 분주했다. 함께 공을 차고 어울려 노는 것을 보니 말은 통하지 않아도 동심은 서로 잘 통했다.
붕따우 성 찌우덕 현의 특수학교에서는 대원들이 땀을 닦는 척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청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색깔에 따라 악보를 가르쳐주고 핸드 벨 시범을 보이게 했는데, 그곳의 교장 선생님도 연신 눈물을 닦았다. 또 그들에게 들리거나 말거나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우리 어린이 대원들을 보며 감동했다. 우리 품에 안기는 베트남 아이들의 앙상한 뼈마디에 다시 코끝이 시큰했다.
아이들은 얼굴 아래에 손가락을 꽃처럼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수화로 ‘깜언’이란다. 말하지 않아도 고맙다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 호치민의 외곽 빈홍화 마을에서 맹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소녀가 학용품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을 때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개업의들이 병원 문을 닫고, 가족과 식사할 틈도 없이 바쁜 대학병원 의사가 금싸라기 같은 휴가를 베트남 의료봉사에 사용했다. 하지만 사랑을 전하러 왔다가 더 많은 것, 정을 배우고 간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정이 흐르는 사회가 되기를 모두 함께 소망했다. 우리는 땀을 많이 흘렸지만 속으로는 땀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렸을 것이다.
/민혜숙 소설가·호남신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