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메라비안(Albert Mehrabian) 교수는 대화나 연설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말의 내용이 7%, 목소리가 38%, 눈빛·표정·태도 등과 같은 몸짓언어가 55%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이른바 ‘메라비안 법칙’이다. 효과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들은 ‘시험을 못 보는 것은 괜찮다’고 쿨하게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정작 시험을 못 봤다고 작은 소리로 풀이 죽어 말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쌀쌀하게 대꾸한 적은 없는가.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낸 적은 없었는지, 괜찮다고 말해 놓고도, 왜 남들은 잘 하는데 너는 그 쉬운 문제를 틀렸느냐고 밀어붙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말과 표정이 따로였던 많은 순간들을.
어떤 고등학생이 시험지를 받으면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고 고백했다. 시험을 못 보면 실망할 엄마 때문에 걱정이 된단다. 그 엄마는 ‘내가 언제 뭐라고 하든?’하면서 항변했지만 아이는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엄마 얼굴에 씌어 있어요. 그리고 시험을 못 보면 말도 안 하잖아요.’라고 대꾸했단다. 필자가 10년 전에 소설 ‘서울대 시지푸스’를 썼던 때와 교육상황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 몰입교육이다 뭐다 해서 더 심해졌다고나 할까.
대한민국 교육의 열풍이 부는 분당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말고사에서 국어 33문제 중에 3개 틀렸는데, 과목 석차가 405명 중에서 287등이야. 어떻게 하지?” 수화기를 통해서도 발을 동동 구르는 동생의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3개 틀린 것 때문에 30문제나 맞춘 조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애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30개나 정답을 맞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해 줄 때 비로소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고 3인 아들이 얼마 전 기숙사를 나오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달래도 집에서 다니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다. 잘못 하다간 아침 밥 해주기 싫어서 학교 기숙사에 맡겨 버리려는 엄마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아이와 대화를 하던 중에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월에 치른 평가원 모의고사는 어려웠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지만 7월 모의고사에서 다른 아이들은 성적을 회복했는데 본인의 성적만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세상에는 노력한 대로 순간순간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일도 많다고, 그래도 끝까지 우직하게 가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너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위로를 해도 소죽은 넋이었다. 결국 아빠까지 동원되어 도종환 시인의 시까지 읊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실망했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시의 힘, 아니, 우리 인생의 깊은 곳을 성찰한 시인의 말에 동감한 것 같았다. 아이는 다시 한 번 도전을 해 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다. 불안한 가운데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더위와 싸우는 젊은이들, 일터에서 분투하는 남편들, 어려운 살림을 거들어 보겠다고 마트에서 식당에서 애쓰는 아내들. 그 누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고, 고유가에 물가마저 급등하고 있는 요즈음 덥기는 왜 그렇게 더운지, 신경에 날이 선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말만 하지 말고 상냥한 목소리로 따뜻한 표정으로 피차 연약한 우리 인생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민혜숙 소설가·호남신학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