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出師表)를 ‘올리라’
2008년 03월 02일(일) 18:56 가가
이른바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들’로 구분 짓게 될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과연 그들에게 던질 출사표라도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출사표’란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올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출사표’(出師表)란 전쟁을 위한 출병(出兵)에 앞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의미한다. 모름지기 임금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한다면, 함부로 ‘던져서는’ 안 될 일이고, 정(精)과 성(誠)을 다하여 공손히 ‘올려야 하는’ 글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보고 듣는 것이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출사표를 함부로 ‘던지는’ 이들이 도처에 꽉 차 있다고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우리 정치를 염려하게 만든다.
널리 알려진 대로 출사표란 글의 형식은 제갈공명에게서부터 비롯된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촉한의 군주 유비의 뜻을 받들어 스스로 군대를 앞세우고 먼길을 떠나기 전, 제갈공명은 유비의 아들이자 촉의 2대 군주였던 유선에게 우국충정의 뜻을 담은 글을 남긴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을 하기 어려운 전쟁터로 떠나는 충신의 마음은 그만큼 비장하였을 터, 어린 군주에게 나라를 다스릴 올바른 방책을 담은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올리니, 〈전출사표〉와 〈후출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무릇 신하된 자로서 출사표를 읽고서 울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이라면 마땅히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에게는 백성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역할,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공정하게 조정하는 역할, 어그러진 질서를 바르게 잡아주는 역할이 부여되는 바, 모름지기 정치를 하겠노라고 나서는 이라면 그와 같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일, 그 답을 자신의 출사표에 새기는 일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예비 후보들이 하는 일은 이 호텔 저 호텔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빛내 줄 정치적 실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만 경도되어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때로는 지연에 기대고, 때로는 학연에 기대어 유력 인사의 지원 의사를 얻어냄으로써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에 들떠있는 그들, 어제도 오늘도 정치적 실세들의 후광에만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고 서 있는 인사들을 바라보는 일은 심히 우울한 일이다. 이러한 우울증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결국엔 심각한 정치 혐오증까지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들 한다. 이는 백성이 곧 주인이요, 군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주인이요, 군주인 백성으로서 우리에겐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것은 내 뒤를 누가 봐주고 있는가를 목 놓아 외치는 후보가 아니라, 힘의 향방에 따라 이합집산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해버리는 얄팍한 정치가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내부의 목소리로, 자신의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잘 아는 후보를 이 나라의 일꾼으로 기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후보는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로만 치닫는 마음을 접고, 어두운 골방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나라와 백성으로 하여금 물 만난 고기처럼 살맛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적은 출사표를 먼저 올려야 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인내로써 제갈공명을 천하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인재로 등용하는 데 성공한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있음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유비의 고백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수어지교(水魚之交)의 만남을 말하여 주는 것인바, 우리들 백성들 또한 한 마리 물고기로서 마음 놓고 놀고 마실 수 있는 청량한 물줄기를 만나고 싶다.
4월, 한창 물이 오른 수목들은 마음껏 새 잎을 틔우고, 그렇게 마음껏 새로운 꽃송이를 피워 올릴 것이다. 우리도 그와 같았으면 한다. 우리의 선택이 제대로 된, 깨끗한 희망의 정치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출사표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강희숙 조선대 국문과 교수
‘출사표’(出師表)란 전쟁을 위한 출병(出兵)에 앞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의미한다. 모름지기 임금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한다면, 함부로 ‘던져서는’ 안 될 일이고, 정(精)과 성(誠)을 다하여 공손히 ‘올려야 하는’ 글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보고 듣는 것이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출사표를 함부로 ‘던지는’ 이들이 도처에 꽉 차 있다고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우리 정치를 염려하게 만든다.
널리 알려진 대로 출사표란 글의 형식은 제갈공명에게서부터 비롯된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촉한의 군주 유비의 뜻을 받들어 스스로 군대를 앞세우고 먼길을 떠나기 전, 제갈공명은 유비의 아들이자 촉의 2대 군주였던 유선에게 우국충정의 뜻을 담은 글을 남긴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을 하기 어려운 전쟁터로 떠나는 충신의 마음은 그만큼 비장하였을 터, 어린 군주에게 나라를 다스릴 올바른 방책을 담은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올리니, 〈전출사표〉와 〈후출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무릇 신하된 자로서 출사표를 읽고서 울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이라면 마땅히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에게는 백성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역할,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공정하게 조정하는 역할, 어그러진 질서를 바르게 잡아주는 역할이 부여되는 바, 모름지기 정치를 하겠노라고 나서는 이라면 그와 같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일, 그 답을 자신의 출사표에 새기는 일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예비 후보들이 하는 일은 이 호텔 저 호텔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빛내 줄 정치적 실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만 경도되어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때로는 지연에 기대고, 때로는 학연에 기대어 유력 인사의 지원 의사를 얻어냄으로써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에 들떠있는 그들, 어제도 오늘도 정치적 실세들의 후광에만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고 서 있는 인사들을 바라보는 일은 심히 우울한 일이다. 이러한 우울증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결국엔 심각한 정치 혐오증까지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들 한다. 이는 백성이 곧 주인이요, 군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주인이요, 군주인 백성으로서 우리에겐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것은 내 뒤를 누가 봐주고 있는가를 목 놓아 외치는 후보가 아니라, 힘의 향방에 따라 이합집산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해버리는 얄팍한 정치가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내부의 목소리로, 자신의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잘 아는 후보를 이 나라의 일꾼으로 기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후보는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로만 치닫는 마음을 접고, 어두운 골방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나라와 백성으로 하여금 물 만난 고기처럼 살맛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적은 출사표를 먼저 올려야 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인내로써 제갈공명을 천하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인재로 등용하는 데 성공한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있음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유비의 고백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수어지교(水魚之交)의 만남을 말하여 주는 것인바, 우리들 백성들 또한 한 마리 물고기로서 마음 놓고 놀고 마실 수 있는 청량한 물줄기를 만나고 싶다.
4월, 한창 물이 오른 수목들은 마음껏 새 잎을 틔우고, 그렇게 마음껏 새로운 꽃송이를 피워 올릴 것이다. 우리도 그와 같았으면 한다. 우리의 선택이 제대로 된, 깨끗한 희망의 정치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출사표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강희숙 조선대 국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