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학교 인문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특강 자리에서였다. 꿈에 부풀어야 할 신입생의 질문은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그대로 지목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첫 번째 질문은, 남녀공학에 다녀야 졸업 후 취업 등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여자대학 입학을 망설였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해야 할 자리다. 양성평등 시대라고 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게 현실이지 않은가. 7∼9급 공무원이나 초·중등학교 평교사 숫자는 여성이 많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학계·정치계·재계 모두 여성의 비율이 10% 전후인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각 당 후보들은 여성취업의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여성단체에서는 50%를 주장해야 30% 선으로 올라가지, 그렇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학연, 지연 등 끈이나 ‘훼밀리’에 끌려가는 현실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능력위주의 드림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답변했지만 드림은 부재의 소망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인문학의 소멸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우리의 장래는 과연 보장되느냐는 것이었다. 숭례문 소실 같은 큰 사건이 생길 때만 인문학자는 사회를 진단하는 한 말씀으로 TV에 잠깐 뜨신다. 평소에는 연예인과 고액 연봉인들 만이 우상이 되는 시대다.
돈과 오락의 시대여서 초등학교 때부터 꿈도 그 범주다. 어린 아이들 대부분이 연예인이나 사장님이 되겠단다. 문예창작과 학생들 대부분도 돈 안 되는 시인이나 소설가보다는 돈 잘 버는 방송작가가 꿈이다. 좋은 방송작가가 되려면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의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는 원칙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을 소홀히 하는 사회는 사람다운 세상을 거부하는 사회다. 숭례문 같은 기념비적인 것을 상실하면 조상을 잃은 것과 같은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고 프로이드는 말했다. 숭례문은 곧 인문학이었다. 거기 역사와 문화가 있었고 그것이 소실되자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를 우리는 실감했다.
세 번째 질문은 학점과 그 외 활동의 비중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은 교양과 창조적 능력을 지향하는 전문인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은 학점 목표의 외길이다. 학점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학생과 공부에 관심이 생겨 공부하는 학생 사이의 미래는 확연히 다르다.
시가 좋아서 많이 읽다 보니까 쓰게 되고 이왕이면 좋은 시를 쓰고 싶어 40년이 넘도록 공부하는 나에게 시는 여전히 연인이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니 행복한 삶 아닌가. ‘to have’의 삶이 아니라 ‘to be’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미래를 뇌의 감정 중추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예견한다. 이성과 언어를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지배하던 지금까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교육은 감성계와 상상력 개발을 위해 선두에 서야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등록금이 너무 많다는 질문이었다. 학생은 부끄러움을 참으며 엄마 아빠가 다 벌어도 남매의 등록금이 모자라는 자기 집안 사정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 같이 슬퍼졌다. 가슴이 아팠다. 누가 답변할 것인가. 인구 수가 줄어드니 제발 아기 좀 낳으라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학기마다 등록금 문제로 휴학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허수인가.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대학 교정에는 매화가 수수알만큼 부풀어 있었다. 멀지 않아 이 교정에도 매화 향기 가득하리라. 소나무에 드는 바람소리를 듣게 하고 매화의 은근한 향을 맡게 하여 아이들의 심성을 교육했다는 “풍입송 암향의 전통육아 교육법이 있었지. 크게 들숨을 쉰다. 아직 피지 않은 매화 등걸에서 암향이 나는 듯하다. 이것도 지각 상상력이다.
/김유선 (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장안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