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에도 순서가 있다
2008년 01월 27일(일) 19:11 가가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놓은 교육문제 해법에 따르면, 개인의 삶의 질과 국가경쟁력이 오로지 영어에만 달려 있다니, 너무나도 똑 떨어지는 분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어미와 아비들은 이제 새 생명이 태어나면 어미 아비의 말 같은 것에는 절대로 노출시키지 말고, ‘맘’(mom), ’대디’(daddy)를 힘차게 외쳐대는 아이로 키워야 할 일이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대학이건 취업이건 걱정할 필요 없는 유능한 인재로 키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요, 교육 현안이 영어 능력이라는 인식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 붙들려 있는 아이들, 그러고도 모자라 밤 12시, 1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리고, 학교 교육의 모든 목표가 대학입시만을 향하고 있음으로써 성적의 등급이 그대로 인격의 등급을 결정하고 마는 교육 여건 같은 것은 아예 문제의 대열에 끼지도 않는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것이 용광로처럼 솟구친다.
물론 버터 냄새 풀풀 나게 영어를 구사하고 싶은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당장 해야 할 또 다른 일들을 모두 제쳐놓지 않는 한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잠시 그 열망을 뒤로 한 채 더 급하고도 긴요한 일들에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국가 또한 분명히 더 급하고도 긴요한 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몰입식 영어교육이니 공교육을 통한 영어 사교육 시장 추방이니 하는 해법이 최선의 해결안이 아니래서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이 일에도 순서가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자신의 인격을 존중받으며, 다른 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또한, 대학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달란트(재능)’가 무엇인가를 알고서,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고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그저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함으로써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기회를 단 한 차례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보는 집단 최면에서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 한국어 능력을 신장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일 또한 국가가 맨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의 개수를 셀 때 흔히 동원하는 비유가 있다. 우리가 육안으로 셀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의 수효가 5천 내지는 6천 개 정도인데, 딱 그만큼이 언어의 개수라는 것이다. 절대로 적다고 볼 수 없는 그 언어들 가운데 국어는 무려 10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 각국이 자국어의 언어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피나는 노력들을 할 터이고, 따라서 우리가 이 자리에 그냥 멈춰 있다면 계속해서 추월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국가가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구사하기 위해 들여야 할 천문학적인 돈을 국어의 보급과 해외 한국학 연구 인력 확보 등에 씀으로써 우리 말과 문화의 지위를 높이는 일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의 외국인, 10만에 해당하는 국제결혼 이주 여성 및 그 2세들이 이 땅에서 윤택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확하면서도 유창한 한국어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일일 터, 이러한 문제 해결이야말로 국가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대로 그것이 고민 끝에 얻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겠다. 다만, 여론의 매서운 질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이 진정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며 일의 순서를 먼저 생각하였으면 한다.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강희숙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요, 교육 현안이 영어 능력이라는 인식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 붙들려 있는 아이들, 그러고도 모자라 밤 12시, 1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리고, 학교 교육의 모든 목표가 대학입시만을 향하고 있음으로써 성적의 등급이 그대로 인격의 등급을 결정하고 마는 교육 여건 같은 것은 아예 문제의 대열에 끼지도 않는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것이 용광로처럼 솟구친다.
물론 버터 냄새 풀풀 나게 영어를 구사하고 싶은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당장 해야 할 또 다른 일들을 모두 제쳐놓지 않는 한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잠시 그 열망을 뒤로 한 채 더 급하고도 긴요한 일들에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국가 또한 분명히 더 급하고도 긴요한 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몰입식 영어교육이니 공교육을 통한 영어 사교육 시장 추방이니 하는 해법이 최선의 해결안이 아니래서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이 일에도 순서가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자신의 인격을 존중받으며, 다른 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또한, 대학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달란트(재능)’가 무엇인가를 알고서,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고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그저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함으로써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기회를 단 한 차례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보는 집단 최면에서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 한국어 능력을 신장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일 또한 국가가 맨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의 개수를 셀 때 흔히 동원하는 비유가 있다. 우리가 육안으로 셀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의 수효가 5천 내지는 6천 개 정도인데, 딱 그만큼이 언어의 개수라는 것이다. 절대로 적다고 볼 수 없는 그 언어들 가운데 국어는 무려 10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 각국이 자국어의 언어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피나는 노력들을 할 터이고, 따라서 우리가 이 자리에 그냥 멈춰 있다면 계속해서 추월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국가가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구사하기 위해 들여야 할 천문학적인 돈을 국어의 보급과 해외 한국학 연구 인력 확보 등에 씀으로써 우리 말과 문화의 지위를 높이는 일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의 외국인, 10만에 해당하는 국제결혼 이주 여성 및 그 2세들이 이 땅에서 윤택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확하면서도 유창한 한국어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일일 터, 이러한 문제 해결이야말로 국가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대로 그것이 고민 끝에 얻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겠다. 다만, 여론의 매서운 질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이 진정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며 일의 순서를 먼저 생각하였으면 한다.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강희숙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