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전남대 교환교수로 파견될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광주공항에 도착해 전남대 교수아파트까지 오는 사이에 시선을 강하게 자극한 것은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커다랗게 새겨진 ‘빛’이라는 글자였다.
며칠 후에야 이 ‘빛’ 자가 ‘광주’란 도시의 상징임을 알 수 있었다. 광주의 한자어가 ‘光州’로 뜻을 풀이하면 ‘빛의 고을’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깊은 뜻을 느낀 나는 1년간 생활하게 될 ‘빛의 고을’ 광주를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강의에, 연구에, 기타 자질구레한 일에 쫓기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귀국 일자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늦었지만 그 무언가를 남기지 않으면 내가 1년여동안 생활한 광주시민에게 무형의 빚을 지는 것만 같은 죄의식에서 펜을 들게 되었다.
‘빛’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삼광(三光), 삼정(三精)이다. 다 같이 ‘해, 달, 별’을 아우르는 말로서 ‘해, 달, 별’이’빛’의 본원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세상은 ‘해, 달, 별’이 있음으로 해서 낮이나 밤이나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에게 이렇듯 고마운 빛을 선사하였을까?
중국의 설화 하나가 떠오른다. 아주 멀고 먼 옛날, 우주국(宇宙國)이라는 왕국이 있었는데 국왕의 이름은 ‘태양(太陽)’이었다. 국왕에게는 천사 같은 미모와 비단결 같은 마음에 지혜까지 뛰어난 현처(賢妻) ‘월량(月亮)’과 부모를 존경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성성(星星)’이라는 수많은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국왕 태양은 백성들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며 나라를 잘 다스렸다. 생업에 충실한 백성들도 윤택한 생활을 하며 국왕의 보호 속에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평화롭고 행복한 우주국에 재앙이 닥친다. 오래 전부터 우주국을 호시탐탐 노리던 주동국(宙洞國)이 우주국의 변경을 침입해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국왕 태양은 나라의 안녕과 도탄 속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한다.
부인 월량은 전장의 남편이 근심스러워 자녀들과 함께 남편을 찾아 떠난다. 월량과 자녀들은 불행하게도 주동국 적장에게 잡히고 만다. 월량의 미모에 반한 적장은 그 녀를 첩으로 삼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쓴다.
하지만 월량의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는다. 월량은 마침내 지혜를 발휘해 자녀들을 이끌고 적장의 마수에서 벗어나 가던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적들이 끈질기게 추격하는 바람에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만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사이 국왕 태양은 수많은 싸움 끝에 침략자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왔다. 부인과 자녀들이 적장의 마수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태양은 그 길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낮에만 길을 재촉하는 태양은, 적들의 눈을 피해 밤길만 걷는 월량 및 자녀들과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다. 태양은 이 때 찬란한 빛이 낮이나 밤이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해와 달과 별이 지구상에 사는 온갖 미물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을 발했던 것이다.
인간들은 마땅히 우리에게 삶을 영위하게 해준 우주국의 해님과 달님, 별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들을 본받아 각자의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빛의 고을’을 이룩했듯이 말이다.
원님은 원님으로서 한결같이 일편단심으로 이 땅의 백성을 생각하고, 관아는 관아대로 오로지 백성을 위해 밤낮없이 동분서주하고, 백성은 백성으로서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등 본분에 충직했기에 광주가 ‘빛의 고을’로까지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민은 민으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하고, 정부는 민심을 잘 살펴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며, 장관은 민심에 순응하여 백성을 위해 정사를 펼치는 등 삼위일체를 이룬다면 ‘빛의 고을’ 광주는 더욱 빛날 것이다. ‘빛의 고을’ 광주가 영원히 빛나기를 축원한다.
/강은국 중국 푸단대 교수·전남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