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민주 시민의식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 전영원 시민플랫폼 나들 공동대표
2025년 02월 25일(화) 00:00
시민플랫폼 ‘나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지역 청년활동가 지원 사업을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광주사람들은 ‘시민플랫폼 나들’이라는 새로운 시민단체를 세웠다. 그동안 시민운동이라면 후원회비 정도만 냈거나 시민단체 가입조차 한 적 없는 광주시민들이 세월호 이후의 ‘나’와 ‘세상’은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각성과 함께 사단법인의 규모가 아닌 작은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든 것이다.

나들의 연간 활동 중에 ‘지역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이 있다. 이는 창립 이듬해인 2015년부터 올해까지,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코로나19 당시에도 쉼없이 이어온 활동이다. 지방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버리는 현실 속에 그래도 광주를 떠나지 않고 공익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응원을 해보자는 뜻에서 시작한 사업인데 작년에는 지역 청년 열 명을 발굴하여 교통비 정도를 지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민플랫폼 나들의 회원 활동이 정체되어 세대교체가 안되고 탈퇴자가 속출하면서 예산이 줄어들다보니 상근 실무자를 들일 형편이 안 되는 속에서도 환경운동가, 마을활동가, 인권활동가, 문화기획자를 지향하는 지역 청년들은 눈에 띄었다. 그래서 2025년 정기총회에서 나들 회원들은 실무자 채용을 포기하는 대신 청년 지원만큼은 포기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사실 지원받는 청년들은 나들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아예 없다 보니 주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연말에 아주 쿨하게 이별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 정기총회에서 대단한 반전이 일어났다. 작년에 지원받았던 청년들 중에서 네 명, 재작년 지원 청년 한 명이 나들 일반 활동에 기웃대더니 정식으로 회원이 되었고 청년대표의 권유에 의해 ‘청년이사’라는 명함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진실로 반갑고 고마운 일인지라 이사들은 머리를 썼다. 일반회비가 1만원이면 이사회비는 최소 3만원 이상 납부해야 하기에 일부러 ‘청년이사’라는 명칭을 부여해서 일반회비만 내도 되게 했으며 그 비용이 부담된다면 일촌을 맺어 대신 내겠다는 이사들도 나타났다.

2025 정기총회에서 이사로 인준을 받은 청년들은 기존 회원들 틈에 끼어서 올해 사업안을 놓고 토론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뭔가를 착각한 아버지뻘 되는 회원의 엉뚱한 발언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 긴장이 풀렸다가, 과연 시민운동체의 사업다운가 아닌가 하면서 심각한 논쟁이 붙을 때는 살짝 굳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돋보기로도 잘 보이지 않는 예산안 숫자 때문에 회의 내내 버벅댔는데 20대 청년들로서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낯선 풍경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의 중에 특별한 일도 있었다. ‘3년상을 치르는 세월호 시민상주’ 활동에 전념하는 회원들이 총회 전 이사회에서 총회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던 사업을 제안했다. 그동안 4·16연대에서 광주 시민상주팀의 세월호 추모 사업에 일정 비용을 지원했는데 11년째인 올해부터는 광주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우리 단체가 비용 분담을 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이미 예산에 맞게 올해 사업안을 상정했는데 느닷없는 특별 사업을 하자는 제안에 회의장은 돌연 활기가 넘치며 시끄러워졌다. 청년들은 이날 총회에서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다른 사업안은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단어도 잘 안 떠올라 헤매던 어르신 회원들이 미리 의논한 적도 없는 연대사업안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진지하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시민단체 회의 과정을 지켜본 청년들에게 광주 시민 의식이 물 스며들 듯이 조금씩은 스며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14년 시민플랫폼 나들을 만들었을 당시 주된 연령층이었던 50대들은 20~30대 회원들과의 회의 과정을 통해 ‘퍼실리테이터’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의 기법을 알게 됐다. 나이 많은 광주시민들이 더 어린 시민들 덕에 누구나 고르게 발언하는 회의 기법을 터득했고 큰소리 내지 않고도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여 합리적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 스며들 듯이 서로가 스며드는 것, 세대를 넘어 광주의 시민 의식이 자연스레 연결되고 이어지는 활동 현장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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