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여전히 짜다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3년 06월 23일(금) 07:00 가가
자주 가는 국밥집에 식사를 하러 갔다. 사장님과 어떤 손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소금 얘기를 하는 듯 하였다. 그리고 구석에 묵혀 두었던 소금 한 자루를 꺼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해 수산물을 비롯한 소금에 대한 말들이 많아서 나도 끼어 들면서 언제, 얼마에 구입하셨는지 물어 보았다. 한 5년 전에 20㎏을 몇 천 원에 구입했다고 하며 엊그제 구입 할 때는 3만 원을 넘게 주었다고 말해 주었다. ‘나도 소금을 좀 사 두어야 하나’ 하며 잠깐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는데 신안 도초에서 목회하는 후배 목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말해 주기를 소금값이 오르기도 했지만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해 주었다. 도매상들이 오늘 생산된 소금도 당장 사가겠다고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소금이 우리 삶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천일염은 바닷물로 얻을 수 밖에 없으니 후쿠시마 오염수의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들이 생기게 되고 더 나아가 두렵기까지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에 소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음식의 간을 맞추고 풍미를 더해 주는데 필수적이며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 물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정부가 나서서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는 없다는 둥, 5년을 걸려야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 근해에 다다른다는 둥, 정부 인사가 나와서 ‘나도 마실 수 있다’는 식의 대처로 국민의 불안한 마음을 불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영화의 대사 중에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 더 소중하오’라고 소리치던 왕의 모습을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상상일까. 과거의 청산도 좋고, 친일도 좋고, 화해도 좋지만 출발점이 이상하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무조건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고 세계의 여론을 이끌고 주도적으로 실태를 파악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며 감시의 눈초리를 매섭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세계를 향해 로비를 하고 우리나라를 향한 다양한 압박을 가하여 방류가 시작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막아서고 우리나라와 후손들에게 이익 되는 부분들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국민에게 이익이 없는데 소수의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일들이 진행된다면 참으로 아픈 현실이다.
성경에는 소금에 대한 몇 가지 얘기가 있다. 첫째로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일가족만 피신을 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둘째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셋째는 마을에 물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선지자 엘리사가 물 근원에 가서 소금을 던지며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물이 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나온다. 넷째는 저주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소금과 같이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시며 소금을 두고 화목하게 지내라는 내용이 이어져 있다.
예수께서 하신 소금에 대한 비유는 복음서에 등장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며 그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 하겠다.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윤리과 도덕 면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에 대해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짠맛을 잃어 그 기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인 소금에 불순물이 들어가 있을 때이다. 예수 시대에 소금은 불순물이 많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짠맛은 달아나고 불순물만 남게 되어 우기에 길가에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소금은 여전히 짜다. 하지만 그것에 해가 되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의 모습이 아닐 수 있겠다. 신앙도 삶도 소금은 순수하게 짠맛을 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세계를 향해 로비를 하고 우리나라를 향한 다양한 압박을 가하여 방류가 시작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막아서고 우리나라와 후손들에게 이익 되는 부분들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국민에게 이익이 없는데 소수의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일들이 진행된다면 참으로 아픈 현실이다.
성경에는 소금에 대한 몇 가지 얘기가 있다. 첫째로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일가족만 피신을 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둘째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셋째는 마을에 물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선지자 엘리사가 물 근원에 가서 소금을 던지며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물이 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나온다. 넷째는 저주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소금과 같이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시며 소금을 두고 화목하게 지내라는 내용이 이어져 있다.
예수께서 하신 소금에 대한 비유는 복음서에 등장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며 그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 하겠다.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윤리과 도덕 면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에 대해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짠맛을 잃어 그 기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인 소금에 불순물이 들어가 있을 때이다. 예수 시대에 소금은 불순물이 많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짠맛은 달아나고 불순물만 남게 되어 우기에 길가에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소금은 여전히 짜다. 하지만 그것에 해가 되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의 모습이 아닐 수 있겠다. 신앙도 삶도 소금은 순수하게 짠맛을 내는 것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