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시민으로
2020년 12월 04일(금) 04:00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오늘날 한국에서 ‘시민’과 ‘국민’은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무더위나 추위에도 자신의 억울함과 부도덕을 알리기 위해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수년 전 촛불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매일같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국민 주권’을 외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정치적 권리를 적극 행사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 참여를 가리켜 ‘시민 정치’ ‘시민 권력’이라고 부르며, 촛불 집회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준 절제와 평화, 높은 사회 의식과 성숙한 토론 문화를 두고 ‘시민 정신’ ‘시민 의식’의 발현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시민이나 국민이라는 개념은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나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사실 시민이란 개념은 유럽에서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절대 왕정의 종속에서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사람의 의미였다. 국민이란 절대 왕정이 붕괴된 이후 선거 등을 통해 대표자가 선출되면서 통일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 국가가 발달했던 이탈리아나 절대 왕정의 역사가 없는 스위스 등에서는 ‘시민 정신’이 발달하지만 이와 달리 강력한 국가가 근대화를 주도했던 독일·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일찍부터 사회 구성원들의 의무와 권리가 ‘국민’의 권리와 의무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자발성과 참여의 권리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장되는 ‘시민 사회’인가? 아니면 국가에 속해 있는 느낌을 주는 국가의 하위로서의 ‘국민 국가’인가? 원불교 성직자인 나의 화두는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라는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의 깨침의 소리, 일심의 소리, 진리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세계 시민권(Cosmopolitan)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세계의 모든 시민이 어디서나 여행하고 체류할 수 있는 권리, 어디서나 적대적으로 대접받지 않을 권리, 지구에 대한 공동의 권리와 책임 등을 포함했다. 그 가운데 최소한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TV·자동차·반도체·조선·컴퓨터·휴대폰 등 첨단 물품을 수출하는 세계 주요 국가가 된 지 오래이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는 현실이 지금도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개발 논리가 우선인 4대강 개발로, 용산 사태의 외면자로 국민들을 길들이고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데 무기력한 국가의 국민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본다.

우리가 자유를, 인권을, 평화를 나누어 줄 수준이 되었는가?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나라는 장차 세계의 정신적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서 국가, 사회, 종교에 헌신한 분들을 조상으로 받들고, 민족정기를 높이 드러내고, 민족중흥을 넘어서서 조국을 대흥시키고, 평화적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으므로 인화단결이 가장 급선무라 하며 이를 외면한 어떠한 주의·주장과 명분도 큰 위험과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려서 무조건 순응하는 데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곧 세계 시민이라는 깨달음을 시작으로 인종과 민족을 넘어서고, 단일 국가만의 이익을 위하는 울타리를 넘어서 정의 실천의 주체들로 바로 서서 평화 실현의 공공성과 연대성을 실천하는 주인이 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은 공동체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서로 관계 맺으며 공동의 문제를 숙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국가 주도적 정책이나 혜택에 주권을 내맡기는 수동적 국민이 아닌 평화와 인권, 자유와 같은 본래의 권리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시민 정신을 지닌 깨어난 시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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