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뒤흔든 자연재해, 피할 수 없어도 대비할 수 있다
2020년 05월 01일(금) 00: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재난의 세계사
루시 존스 지음, 권예리 옮김

석고를 붓자 모습이 드러난 2000년전 폼페이 희생자들의 시신.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발했을 때 무고한 한국인의 희생당했다. 당시 일본은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책임을 돌릴 대상을 찾았다. 재난 앞에서 희생자를 찾으려는 심리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다. 물론 한편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심리 또한 있다.

홍수와 지진, 화산 같은 자연재해는 파괴와 비극을 낳는다. 문제는 언제 어느 시기에 그 재난이 닥쳐올 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2천 년 전 베수비오산이 분화해 폼페이가 괴멸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화산쇄설류와 독성 기체로 죽음을 맞았다. 한때 번영의 도시였던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힌 것은 불과 며칠의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있다. 왜 사람들은 활화산 아래 도시를 건설했을까. 이유는 화산토에 있었다. 배수가 잘 되고 비옥해 농사를 짓기에 좋은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이었다. 농사에 적합한 지역이지만 한편으로 홍수가 발생하는 곳이었다. 문명이 홍수와 치수라는 상반된 상황에 따라 전개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인류문명을 흔든 자연재해의 역사를 조명한 책 ‘재난의 세계사’가 발간됐다. ‘미래의 자연재해에 맞서기 위한 과거로부터의 교훈’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재난과 이를 극복할 힘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지진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는 루시 존스로, 미국 전역의 ‘위험 감소를 위한 과학 활용’이라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많다. 문화, 도시, 건축, 기술, 환경, 보건 등 다양하다. 재난을 키워드로 분석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루시 존스의 책은 흥미로운 역사책이자 위기 대응 매뉴얼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2009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후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시내.
지난 2004년 남아시아 지진이 발생할 당시, 이후 몰려온 쓰나미로 희생이 컸다. 2009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도 진로 등을 예상했지만 준비 부족이 화를 키웠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식품, 식수, 하수도, 전력을 복잡한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인 40억 명이 도시에 산다는 것은 재난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피해를 입는다. 1927년 미시시피강 홍수 당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했고 정치적 이념은 재난 구호의 걸림돌이 됐다. 또한 당시 만연한 인종차별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는데, 흑인들이 제방 보수에 강제 동원됐다 떼죽음을 당했다.



책은 재난이 사건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꾸는 측면도 다룬다. 1775년 리스본 지진은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이를 계기로 유럽의 세속화 나아가 근대 과학과 철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산의 분화가 가져온 이후의 변화다. 1만 명이 사망해 많은 피해를 입은 한편 뿜어져 나온 황이 성층권까지 치솟아 세계의 기온을 낮췄다. 그 결과 엘니뇨의 영향으로 세계 각지에서 기근이 일어났다. 특히 유럽에선 사회적 혼란이 가중돼 수년 뒤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백두산과 한라산은 휴화산이지만 현재는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로 일정 부분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모든 현상을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주가 지진에 대비한 ‘셰이크아웃 시나리오’를 만들어 훈련을 기획하고 시설을 보강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전략과 행동 지침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연재해 발생 시점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각자가 겪을 대재난의 발생 시점을 영원히 예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재난이 닥쳤을 때, 거리에 상관없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것이다.” <눌와·1만7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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