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하얀나비’…대중음악사의 빛나는 한 줄 노랫말
2020년 03월 06일(금) 00: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이 한 줄의 가사
이주엽 지음
이주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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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을 떠올리면 순교자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꽃잎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게 아닌 송이 채 ‘툭’ 지기 때문이다. 생의 최고의 순간, 붉은 낙화가 결행된다.
아울러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도 아름다우면서도 서정적인 시다. 동백의 생리와 이미지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고 읊었다. 간결한 언어와 시적인 표현이 주는 울림은 간단치 않다.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는 이가 있다. 그는 “낙화와 이별을 담은 한편의 시 같으나, 전통적 선율에 기댄 음악은 다소 능청스러우면서도 여유가 넘친다”고. 바로 작사가인 이주엽 JHN뮤직 대표의 말이다. 그가 이번에 펴낸 ‘이 한 줄의 가사’는 노랫말을 주인공으로 한 이색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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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 가수 김정호의 ‘하얀나비’를 읽어내는 심미안은 깊고 애처롭다.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김정호의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는 김정호의 생애만큼이나 애닯다. 저자는 “그의 가슴엔 사막 하나가 들어앉은 듯, 목소리에 늘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이 불어 갔다”고 회상한다.
무엇보다 김정호의 노래에는 남도의 정한이 깊이 배어 있다. ‘음’이라는 허밍엔 허무와 고독의 세계를 정처 없이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그를 일컬어 ‘한의 가객’이라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운과 맞닥뜨릴 때 삶은 갱신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들국화의 ‘행진’은 작금에 새롭게 다가온다. 물론 노래는 80년대 청춘의 광장에 나부끼던 깃발로 치환된다. 그럼에도 오늘 관점에서 보면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라는 가사는 포기할 수 없는 내일을 상정한다. 불운 속에서도 자유를 잃지 않고 견고하게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밖에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박인희 ‘세월이 가면’,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등 개개의 노래들이 차지하는 음악적 위상과 특징도 만날 수 있다.
가수들에 대한 애정의 단면도 곳곳에 녹아 있다. 저자는 ‘북한강에서’를 부른 정태춘을 “한(恨)과 그리움의 토착적 정서를 독보적으로 그려 온 싱어송라이터”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에 대해서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서성이던 음악가”로 얘기한다.
책을 읽다보면 가객들의 가사보다, 사실은 저자의 글이 더 시적이라는 느낌과 만나게 된다. 대중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의미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가사는 지면이 아니라 허공에서 명멸한다. 써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다. 읽지 말고, 듣고 불러 봐야 한다. 그게 얼마나 좋은 가사인지를.”
<열린책들·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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