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고의사구와 경기 시간
2018년 03월 22일(목) 00:00 가가
프로야구 개막이 내일모레다. 비유나 상징이 아니고 정말로 내일모레, 3월 24일 개막전이 열린다. 올해는 아시안게임이 있어 시범경기 일정을 축소하고 일정을 당겼다. 4월 개막보다야 조금 추운 시작이겠지만, 보고 싶은 야구를 빨리 만날 수 있어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타이거즈는 지난 시즌 감격적인 우승도 맛보았고, 기존의 전력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인 선수, 군 제대 선수와 더불어 풍부한 경험의 베테랑까지 선수단에 추가되었다. 우승까지야 운도 조금 따라야겠지만, 어쨌거나 지는 날보다 이기는 날이 더 많을 것 같다. 화나고 우울한 날보다 기쁘고 즐거운 날이 더 많길 바란다.
개막 일정 말고도 이번 시즌 KBO 프로야구는 몇 가지 변화가 있다. 경기 요소의 변화는 대부분 ‘속도’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NBA와 NFL 등에 점점 더 인기 스포츠의 자리를 내주고 있는 MLB가 위기를 타개할 방책으로 내건 선언이 ‘스피드업’이다.
보통 세 시간 넘게 걸리는 야구 경기의 러닝타임을 최대한으로 줄여 보자는 것이다. 투수의 인터벌, 투수 교체 시간, 공수 교체 시간, 비디오 판독 시간 등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구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게 ‘고의사구’의 생략이다. 2루나 3루에 주자가 있고, 1루가 비어 있을 때 강타자를 만나면 주로 쓰는 작전인 고의사구는 말 그대로 타자가 칠 수 없는 공 네 개를 던져 1루를 내주는 것이다. 안타를 맞느니 베이스를 하나 더 주는, 야구만의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공 네 개를 던지는 시간, 강속구를 던지던 투수도 힘을 빼고 느슨한 투구를 하며, 포수도 자리에 서서 공을 뺄 것을 요구하며 상대 타자도 어깨에 배트를 걸친 채 김빠진 표정을 짓는 시간을, 메이저리그는 없애기로 결정했다. 단지 경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이는 다른 규칙보다도 더한 논란을 불러왔다. 고의사구라 하더라도 경기의 일부인데, 발생 가능성이 있는 어떤 상황을 임의로 지운다는 것은 야구의 본질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 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균 경기 시간이 세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미국에서조차 시간 단축을 위해 애를 쓰는데, 우리의 경우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타고투저 현상으로 인해 두 자리 점수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투수층이 얇아 어떤 날은 마운드 위에 있는 선수가 프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볼넷이 쏟아진다. 이닝 시간이 늘어나면서 실책도 덩달아 많아지고, 각종 작전과 사인이 경기 초반부터 불을 뿜는다.
2007 시즌 KBO 평균 경기 시간은 세 시간 21분이었다. 메이저리그보다 약 20분 이상 길다. 여섯 시 30분에 시작하면 열 시가 다 되어 경기가 매조지된다는 뜻이니, 직장인이 평일에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시간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KBO는 선진 야구, 즉 미국 야구의 방안과 대책을 끌어다 쓰기를 택한 듯하다. 주자가 없을 때 투수에게 주어지는 시간인 ‘12초 룰’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고, 타석에 들어설 타자에게 예비 배트 두 개를 준비하도록 해 배트가 부러져 경기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했다. 비디오 판독도 5분 동안 명확한 근거가 나오지 않으면 원심이 유지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논란이 되는 것은 역시 미국과 같다. 고의사구다.
예외적인 경우지만 고의사구에서 폭투를 범하는 영상을 하이라이트에서 본 적이 있다. 김기태 감독은 그런 실수를 할까 봐 3루수인 이범호를 포수 뒤에 세웠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제지당한 적도 있다. 고의사구인 척 일어났다가 재빨리 앉아 승부에 들어가 타자를 현혹하는 장면도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현재 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있을 때, 그 공 네 개를 던지는 동안, 다음 순서 타자의 아리송한 표정이나 기합 들어간 연습 스윙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사구 의사를 표하면, 타자는 바로 1루까지 걸어간다. 그렇게 다음 타자와 바로 승부.
세 시간은 바쁜 현대인에게 무척 긴 시간이다. 하지만 가끔은 꽤 짧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란 참으로 괴팍하여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 길이를 언제든지 달리한다. 순간순간마다의 스토리가 촘촘히 짜인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그리고 야구를 볼 때 우리는 시간의 괴팍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물론 지루한 게임이 있다. 수준 이하의 플레이를 연발하고, 이닝 중간에 투수는 계속해서 바뀌고, 스트라이크는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경쾌한 타구가 나오는 것도 아닌 경기. 그런 경기가 KBO의 평균 경기 시간을 크게 올리고 있을 것이다. 고의사구가 경기 시간에 미치는 통계적 분석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세 시간 20분. KBO만의 독보적인 경기 시간이다. 이 시간을 줄이려면 MLB의 방식에서 더 나아간, 아니 더 괜찮은 우리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야구팬들의 입장에서 경기 시간이 늘어나 짜증 났던 기억이 몇 있다. 대량 실점 후에 벌을 주듯 투수를 바꾸지 않아 늘어진 경기. 애들 기 싸움하듯 아웃 카운트 세 개에 투수를 세 명 쓰는 경기. 심판이 비디오 판독을 한답시고 10분 넘게 헤드폰을 끼고 묵묵부답이던 경기. ‘몸에 맞는 볼’ 이후에 인사를 했니 안 했니 신경전을 벌이던 경기 등등. 고의사구는 그중에 없다. 이번 시즌의 평균 경기 시간이 어찌될는지, 지켜볼 일이다.
<시인>
보통 세 시간 넘게 걸리는 야구 경기의 러닝타임을 최대한으로 줄여 보자는 것이다. 투수의 인터벌, 투수 교체 시간, 공수 교체 시간, 비디오 판독 시간 등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구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게 ‘고의사구’의 생략이다. 2루나 3루에 주자가 있고, 1루가 비어 있을 때 강타자를 만나면 주로 쓰는 작전인 고의사구는 말 그대로 타자가 칠 수 없는 공 네 개를 던져 1루를 내주는 것이다. 안타를 맞느니 베이스를 하나 더 주는, 야구만의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공 네 개를 던지는 시간, 강속구를 던지던 투수도 힘을 빼고 느슨한 투구를 하며, 포수도 자리에 서서 공을 뺄 것을 요구하며 상대 타자도 어깨에 배트를 걸친 채 김빠진 표정을 짓는 시간을, 메이저리그는 없애기로 결정했다. 단지 경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이는 다른 규칙보다도 더한 논란을 불러왔다. 고의사구라 하더라도 경기의 일부인데, 발생 가능성이 있는 어떤 상황을 임의로 지운다는 것은 야구의 본질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2007 시즌 KBO 평균 경기 시간은 세 시간 21분이었다. 메이저리그보다 약 20분 이상 길다. 여섯 시 30분에 시작하면 열 시가 다 되어 경기가 매조지된다는 뜻이니, 직장인이 평일에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시간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KBO는 선진 야구, 즉 미국 야구의 방안과 대책을 끌어다 쓰기를 택한 듯하다. 주자가 없을 때 투수에게 주어지는 시간인 ‘12초 룰’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고, 타석에 들어설 타자에게 예비 배트 두 개를 준비하도록 해 배트가 부러져 경기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했다. 비디오 판독도 5분 동안 명확한 근거가 나오지 않으면 원심이 유지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논란이 되는 것은 역시 미국과 같다. 고의사구다.
예외적인 경우지만 고의사구에서 폭투를 범하는 영상을 하이라이트에서 본 적이 있다. 김기태 감독은 그런 실수를 할까 봐 3루수인 이범호를 포수 뒤에 세웠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제지당한 적도 있다. 고의사구인 척 일어났다가 재빨리 앉아 승부에 들어가 타자를 현혹하는 장면도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현재 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있을 때, 그 공 네 개를 던지는 동안, 다음 순서 타자의 아리송한 표정이나 기합 들어간 연습 스윙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사구 의사를 표하면, 타자는 바로 1루까지 걸어간다. 그렇게 다음 타자와 바로 승부.
세 시간은 바쁜 현대인에게 무척 긴 시간이다. 하지만 가끔은 꽤 짧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란 참으로 괴팍하여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 길이를 언제든지 달리한다. 순간순간마다의 스토리가 촘촘히 짜인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그리고 야구를 볼 때 우리는 시간의 괴팍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물론 지루한 게임이 있다. 수준 이하의 플레이를 연발하고, 이닝 중간에 투수는 계속해서 바뀌고, 스트라이크는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경쾌한 타구가 나오는 것도 아닌 경기. 그런 경기가 KBO의 평균 경기 시간을 크게 올리고 있을 것이다. 고의사구가 경기 시간에 미치는 통계적 분석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세 시간 20분. KBO만의 독보적인 경기 시간이다. 이 시간을 줄이려면 MLB의 방식에서 더 나아간, 아니 더 괜찮은 우리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야구팬들의 입장에서 경기 시간이 늘어나 짜증 났던 기억이 몇 있다. 대량 실점 후에 벌을 주듯 투수를 바꾸지 않아 늘어진 경기. 애들 기 싸움하듯 아웃 카운트 세 개에 투수를 세 명 쓰는 경기. 심판이 비디오 판독을 한답시고 10분 넘게 헤드폰을 끼고 묵묵부답이던 경기. ‘몸에 맞는 볼’ 이후에 인사를 했니 안 했니 신경전을 벌이던 경기 등등. 고의사구는 그중에 없다. 이번 시즌의 평균 경기 시간이 어찌될는지, 지켜볼 일이다.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