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괜찮아
2018년 03월 12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엄마, ‘미투 운동’이 뭐예요?” 뉴스를 보던 아이가 질문을 했을 때, 부모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하는지 난감하다. 아이들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몰라도 된다고 넘어갈 일은 아니어서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바른 성의식을 갖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쁜 어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 내 몸의 느낌을 이해하고 존중해요, 어린이 성폭력 더 이상 쉬쉬하지 마세요’ 같은 내용이다.
그 가운데 성폭력 피해 어린이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말해도 괜찮아’(제시 글·그림, 문학동네)는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시는 아홉 살 때 이 책을 처음 썼다. 삼촌에게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상처만 키우고 있었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겁을 내며, 혼자서 아픈 비밀을 지키느라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제시는 뭔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먼저 말을 꺼냈다. 제시가 그 일을 처음 겪게 됐을 때부터 부모님께 말을 꺼낼 때의 심정, 그리고 말을 함으로써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자신을 괴롭힐 때 그것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너를 돕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말하고 또 말하렴. 너 혼자 무서워하며 나쁜 꿈을 꾸지 않아도 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에게, 제시가 직접 들려주는 말은 그 어떤 어른도 할 수 없는 지지와 응원의 말이다. “말해도 괜찮아. 네가 말하면 도움을 받게 될 거야”라는 메시지는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그리고 말을 함으로써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현실과 나아갈 길을 일깨운다.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건 네 잘못이 아니거든.”
성폭력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역학 관계 중 하나가 ‘비밀’이라고 한다. 비밀을 깨지 않는 한 고통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고립은 성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고통과 혼란을 악화시킨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좋은 것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겪은 사람은 비난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분명히 나쁜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수치심과 고립감은 완화될 수 있다고. 스스로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의 의미와 함께 적절한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처 방안이기도 하다고.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생존자들이 공감을 통해 연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고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연대 의지를 밝혔으며 특히 권력형 성범죄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의 폭력적인 민낯을 보면서 분노하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가부장제 언어를 내면화하고 살아온 세월만큼 남성이 대변하는 주류 사회에 대한 혁명적 사고의 전환 없이 여성의 배제와 종속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진정한 적폐 청산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주시해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은 나쁜 사람들의 짜증 나는 아우성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오싹한 침묵 때문에 일어났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쓴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말을 빌리면,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데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지고,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추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 그러니 ‘미투 운동’으로 고정된 성역할, 여성에게 끊임없이 강요되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바꾸는 기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불공평함과 억압에 대해 분노하고 이 분노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집단의 명령에 굴복하여 약자를 짓밟을 때 단 한 명만이라도 용기를 내어 불의와 폭력을 향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희망은 있는 것이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끝내 인간이게 만드는 힘, 그것은 고통받는 타인을 향한 공감과 존엄에 있다. “때론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믿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해요.”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바른 성의식을 갖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쁜 어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 내 몸의 느낌을 이해하고 존중해요, 어린이 성폭력 더 이상 쉬쉬하지 마세요’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제시는 뭔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먼저 말을 꺼냈다. 제시가 그 일을 처음 겪게 됐을 때부터 부모님께 말을 꺼낼 때의 심정, 그리고 말을 함으로써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자신을 괴롭힐 때 그것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겪은 사람은 비난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분명히 나쁜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수치심과 고립감은 완화될 수 있다고. 스스로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의 의미와 함께 적절한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처 방안이기도 하다고.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생존자들이 공감을 통해 연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고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연대 의지를 밝혔으며 특히 권력형 성범죄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의 폭력적인 민낯을 보면서 분노하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가부장제 언어를 내면화하고 살아온 세월만큼 남성이 대변하는 주류 사회에 대한 혁명적 사고의 전환 없이 여성의 배제와 종속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진정한 적폐 청산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주시해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은 나쁜 사람들의 짜증 나는 아우성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오싹한 침묵 때문에 일어났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쓴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말을 빌리면,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데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지고,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추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 그러니 ‘미투 운동’으로 고정된 성역할, 여성에게 끊임없이 강요되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바꾸는 기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불공평함과 억압에 대해 분노하고 이 분노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집단의 명령에 굴복하여 약자를 짓밟을 때 단 한 명만이라도 용기를 내어 불의와 폭력을 향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희망은 있는 것이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끝내 인간이게 만드는 힘, 그것은 고통받는 타인을 향한 공감과 존엄에 있다. “때론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믿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