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콩을 활용한 장(두장, 豆醬) 만드는 솜씨가 뛰어났으며 이는 일찍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다. 우리가 흔히 콩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두’로 백태 혹은 메주콩이라고도 한다. 대두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로 우리 땅 곳곳에서 잘 자라며 예로부터 쌀만큼이나 중요한 농작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한반도는 두장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두장의 대표 격인 된장은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된장을 얻기 위해서는 꼬박 1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과 지극한 정성이 요구된다. 콩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조상들이 이처럼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드는 된장에만 만족했을 턱이 없다. 발효 기간을 단축시키고 변수를 최소화하는 일종의 속성 장도 다양하게 개발해 놓으셨다. 메주를 빠개 가루를 내어 발효시킨 막장은 장을 담근 지 보름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다. 보리에 콩을 섞어 만든 메주에 무, 오이, 가지, 배추, 고추 등의 채소 썬 것과 함께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킨 즙장은 햇볕에서 일주일만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속성 장이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청국장이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짚과 함께 혹은 짚으로 엮은 오쟁이에 담아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다. 이렇게 하면 짧게는 이틀 만에도 곰삭은 맛을 내는 청국장을 빚을 수 있다. 같은 콩을 활용해 된장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도 된장 못지않은 맛과 영양을 가진 또 하나의 장을 얻는 셈이다. 예로부터 청국장은 주로 겨울과 봄에 만들어 먹었다. 된장을 담그기 위해 만든 메주에 곰팡이가 피고 건조되는 동안 따뜻한 아랫목에서는 청국장이 익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속성으로 발효시킨 청국장은 겨우내 먹는 국과 찌개에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조미료였던 셈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청국장의 또 다른 미덕은 무염 발효 식품이라는 점이다. 된장은 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발효시키는 까닭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반면 높은 염분 섭취가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속성 장인 청국장은 소금을 넣지 않고 오로지 삶은 콩과 높은 온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각종 발효균으로 속성시킨다. 장기 보관이 목적이 아니었던 청국장에 굳이 소금을 넣을 이유가 없었다. 염분 걱정 없이 얼마든지 먹어도 좋은 청국장의 장점은 과거보다 오히려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청국장과 유사한 속성 장의 경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는 식품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낫토다. 675년 이후 무려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던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콩을 발효시킨 장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다. 그 제조 방법과 기간이 청국장과 거의 동일한 낫토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 1906년 발효에 관여하는 여러 균들 중에서 볏짚에 있는 낫토균만 따로 추출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삶은 콩에 배양한 낫토균을 넣어 발효시킴으로써 잡냄새가 없고 안정적인 품질의 낫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발효 식품인 ‘템페’는 인도네시아 콩 소비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다. 삶은 콩을 히비스커스 잎이나 티크 잎으로 감싸 30도 시(C) 정도에서 2일간 숙성시키면 흡사 콩떡과 같은 덩어리가 된다. 이를 얇게 썰어서 간장을 발라 굽거나 기름에 튀겨 밥과 함께 먹는다.

태국과 라오스의 ‘토아나오’는 삶은 콩을 티크나무 잎을 깐 대바구니에 담아 3일 동안 발효시킨다. 태국의 경우 찰밥과 함께 먹거나 각종 소스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고 라오스에서는 쌀국수의 매운 양념에 사용한다. 삶은 콩을 무화과나무 잎을 이용해 발효시키는 미얀마의 ‘페보옷’은 절구에 찧어 곱게 가루로 만들어 여기에 고춧가루 등의 부재료를 섞어 밥에 뿌려 먹거나 볶음요리나 국의 조미료로 사용한다.

이외에도 아시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는 청국장과 유사한 형태의 속성 장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활용하는 방식은 각 나라의 식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콩을 사용하고 볏짚이나 나뭇잎에 있는 균을 발효에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일반 가정이건 음식점이건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아침 식사에는 반드시 낫토가 함께한다. 일본의 낫토는 가열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먹는 것이 기본이다. 생식을 하는 만큼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각종 부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낫토의 다양한 효능이 과학적으로 규명됨에 따라 낫토는 이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건강식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0여 년 전부터 그 대열에 합류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대형 식품회사에서 낫토를 생산·수입하고 있다. 덕분에 2016년 낫토의 국내 시장 규모는 250억 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무려 10배나 성장했다고 한다. 급기야는 청국장을 추월했다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소식까지 들린다.

어차피 콩을 발효시킨 식품이니 그것이 청국장이면 어떻고 낫토면 어떠랴마는, 그래도 이왕이면 우리 전통 방식과 발효균으로 만든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청국장을 보다 간편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솜씨 좋은 조상들이 애써 남겨 주신 것을 발전시키기는커녕 낫토에 밀려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 된다면, 세상에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