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성폭행 사건에 대한 ‘미투’운동이 거세다.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는 우리 사회 무수한 ‘을’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미투’ 운동이 성공하려면 성폭행에서 범위를 확대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든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고 나와야 할 것이다.

역사학계에서 ‘미투’의 대상은 그릇된 학설이 하나뿐인 ‘정설’(定說), 즉 도그마로 변질된 성역이다. 이 정설이 조선총독부 학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이 식민사관 카르텔은 역사학적 방법론을 깡그리 무시하면서도 이에 도전하는 학자들을 ‘유사’ ‘사이비’ ‘재야’ 등의 딱지를 붙여 매장하는 매카시 수법으로 생존하고 있다.

역사학은 당대에 쓴 1차 사료로 과거를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식민사관 카르텔에는 이런 역사학적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다. 이 카르텔은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 일대라고 우기지만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당대의 사료는 하나도 없는 반면 지금의 중국 하북성(河北省) 일대에 있었다는 당대의 사료들은 차고 넘친다.

한 예로 중국 한(漢)나라의 정사인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낙랑군 산하 열구현(列口縣)이 나온다. 열수(列水)라는 강의 하구에 있었다는 현이니, 열구를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후한서’의 군국지는 “열은 강 이름인데,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水在遼東)”라고 말하고 있다. 열수가 요동에 있었으니 열구현도 당연히 요동에 있었다. 그러나 식민사학 카르텔은 열수는 지금의 대동강이고, 열구는 황해도 은율(殷栗)이라면서 ‘정설’이라고 우긴다. 이 ‘정설’을 사료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 학자들은 과거 성폭행을 고발했던 여성들처럼 매장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존 카터 코벨이라는 미국인 학자가 있었다. 일본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일본 고대 문화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물론 한국인 학자들까지 사실을 거꾸로 말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나이 든 (한국)학자들은 과거 일본 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그러는 것인가?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학도들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을 테니까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서 케케묵은 주장들을 일소해 버렸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코벨 박사가 이 글은 쓴 것이 1981년인데 이 땅의 젊은 학도들은 거꾸로 갔다. 이들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은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났다면서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자 보수 언론이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치켜세웠고, 진보 언론들은 이 ‘케케묵은 주장’에 대학자라도 출현한 양 대서특필했다. 이들의 행태에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지만 코벨 박사의 바람처럼 “식민사학이 틀렸다”고 나섰다면 과거 성추행을 공개했던 여성들이 겪었던 수난의 반복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작정 비난만 할 수도 없다.

식민사학 카르텔은 아직도 갈라파고스다. 새 정권에서 임명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재개를 선언해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2015년까지 국고 47억 원을 투입해 만든 것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인데, 한사군은 모두 북한에 그려 중국에 넘겨주고, 조선총독부의 ‘삼국사기’ 불신론을 추종해서 4세기에도 백제·신라·가야를 그리지 않았고, 독도도 일관되게 삭제했다. 그래서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했고 국고 47억 중 10억 원의 환수조치가 내려지고 폐기된 사업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새 정권에서 중국 공북공정 소조나 일본 극우파가 만들었다면 명실이 상부할 이런 지도를 다시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청와대 해임 청원 게시판까지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천명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역사관과는 정확하게 반대로 간 김도형과 그 카르텔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나는 문재인 정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고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