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 사피엔스의 덫
2018년 02월 27일(화) 00:00 가가
방학이어서 국립광주박물관 뒷산인 매곡산에 몇 번 올랐다. 능선 따라 소롯하게 난 길을 왕복으로 걸으면 십여 리쯤 된다. 도심이 품고 있는 산치고는 수종이 다양하다.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편백나무 숲이 참으로 오지다. 크기로 보아 30여년 정도 되는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오리나무는 지난해 씨앗방울을 매달고 있으면서도 벌써 새로운 꽃눈과 잎눈을 통통히 만들었다. 굴참나무 다갈색 잎은 가지에 남아 사각 거린다. 낙엽송 중에 가장 오래 머물다가 새싹과 교대한다.
겨울나무의 숨소리는 날선 바람으로 들려왔다. 원래 야트막한 산이지만 아파트, 공단 건물로 둘러싸여 점점 사람들이 만든 구조물에 갇혀있는 형세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러 가지다. 겨울산은 적막함이 참맛인데 뉴스나 노래를 큰소리로 틀고 간다. 잠시도 속세와 끊지 못하는 질긴 인연이다. 두 개의 스틱으로 활기차게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발밑에 펼쳐진 완고한 도시의 조직에서 쫓겨온 것처럼 보였다.
인류가 약 1만 년 전까지는 수렵이나 채집으로 상당히 편안하게 살았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면서부터 세계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동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일에 매이게 되었다. 수렵 채집인이 농부가 된 것이다.
밀 재배는 쉽지 않았다.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등골이 휘었다.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종일 잡초를 뽑아야 했다. 병해충과 토끼와 메뚜기 떼를 막아야 했고, 거름을 만들어야 했고, 가뭄에 물을 길러야 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에 사람들은 밀밭 옆에 정착해야만 했다. 생활의 모형이 바뀌었다. 잡초 중 하나일 뿐이었던 밀, 쌀, 감자가 주된 식량이 되면서 역설적으로 이들이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한 곳에 정착하여 재배하는 농업 혁명으로 식량의 총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이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 폭발과 다툼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는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복사본 개수로 결정된다.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은행 잔고의 액수로 측정되는 것처럼. 농업 혁명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들었다.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 이것이 농업 혁명의 덫이다.
앞으로도 인간이 집단의 힘을 키우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과학 혁명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기들이 발명되어 과거에 비해 노동과 시간을 절약했지만 우리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윗글은 전쟁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서 인류 초기 농업 혁명 부분을 요약해본 것이다. 600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히는 놀라운 독서 체험이었다. 인간의 역사를 아주 쉬운 문장으로, 이렇게 절묘한 비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 설립자 저커버거는 이 책을 “인간 문명에 관한 위대한 역사적 서술”이라고 소개했다. 인간의 역량은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행복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동물들은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면서 엄격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하라리. 그가 그리는 인간의 미래는 어두웠다.
새 학기 신입생을 배정받았다. 새로 맞이할 학생이 94명이다. 5개 학급 편성이니 한 반에 20명이 되지 않는다. 2년 연속 한 학급씩 줄었는데 금년에는 학급 감축 대신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다. 광주도 지역에 따라 전입 인구가 늘어나서 포화 상태인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니 매년 학교 통폐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농어촌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 년의 역사를 가진 광주 어느 초등학교 새 학년도 신입생은 6명이다. 이제는 신흥 주택 단지를 제외하고는 도농 가릴 것 없이 맞이하는 현상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문구에 익숙한 우리 세대가 맬서스의 빗나간 ‘인구론’을 맛보고 있다. 농협의 창고는 묵은 쌀로 가득하지만, 신입생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린 교문은 더 이상 북적이지 않는다. 교무실에 선생님이 떠난 빈 의자도 쓸쓸하게 늘어간다.
인류가 약 1만 년 전까지는 수렵이나 채집으로 상당히 편안하게 살았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면서부터 세계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동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일에 매이게 되었다. 수렵 채집인이 농부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인간이 집단의 힘을 키우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과학 혁명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기들이 발명되어 과거에 비해 노동과 시간을 절약했지만 우리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윗글은 전쟁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서 인류 초기 농업 혁명 부분을 요약해본 것이다. 600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히는 놀라운 독서 체험이었다. 인간의 역사를 아주 쉬운 문장으로, 이렇게 절묘한 비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 설립자 저커버거는 이 책을 “인간 문명에 관한 위대한 역사적 서술”이라고 소개했다. 인간의 역량은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행복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동물들은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면서 엄격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하라리. 그가 그리는 인간의 미래는 어두웠다.
새 학기 신입생을 배정받았다. 새로 맞이할 학생이 94명이다. 5개 학급 편성이니 한 반에 20명이 되지 않는다. 2년 연속 한 학급씩 줄었는데 금년에는 학급 감축 대신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다. 광주도 지역에 따라 전입 인구가 늘어나서 포화 상태인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니 매년 학교 통폐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농어촌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 년의 역사를 가진 광주 어느 초등학교 새 학년도 신입생은 6명이다. 이제는 신흥 주택 단지를 제외하고는 도농 가릴 것 없이 맞이하는 현상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문구에 익숙한 우리 세대가 맬서스의 빗나간 ‘인구론’을 맛보고 있다. 농협의 창고는 묵은 쌀로 가득하지만, 신입생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린 교문은 더 이상 북적이지 않는다. 교무실에 선생님이 떠난 빈 의자도 쓸쓸하게 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