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빛낸 호남 출신 학자와 문인들
2018년 02월 19일(월) 00:00 가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15세기에서 16세기 동안, 조선 시대의 유학(儒學)은 가장 왕성한 번성기를 맞아 찬란한 학술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한 유학의 발전 시기에 유독 호남 출신 학자와 문인들이 대거 배출되어, 조선의 유학을 석권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음을 자료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선조(宣祖)에서 광해군 시절에 살았던 지봉 이수광(1563∼1628)은 그의 유명한 저서 ‘지봉유설’에서 “근래의 시인은 대부분 호남에서 나왔다”라고 말하여 유학의 영역인 시문학은 호남 출신이 조선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거명된 사람은 눌재 박상(1474∼1530), 석천 임억령(1496∼1568), 금호 임형수(1514∼1547), 하서 김인후(1510∼1560), 송천 양응정(1519∼1581), 사암 박순(1523∼1589), 고죽 최경창(1539∼1583), 옥봉 백광훈(1537∼1582), 백호 임제(1549∼1587), 제봉 고경명(1533∼1592) 등이다. 이들을 열거하여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은 호남 출신이 독점할 정도라고 말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홍길동전’의 저자 교산 허균(1569∼1618)은 그의 유명한 저서 ‘성소부부고’에서 “중종 시대에는 호남의 인재로서 그 당시에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매우 많았다”라고 말하며 이수광이 거명한 사람 이외에 또 육봉 박우(1476∼1547), 신재 최산두(1483∼1536), 유성춘과 유희춘(1513∼1577) 형제, 학포 양팽손(1488∼1545), 송재 나세찬(1498∼1551), 면앙정 송순(1493∼1582), 국재 오겸(1496∼1582) 등의 학문과 문장을 찬양하고, 대학자로 일재 이항(1499∼1576), 고봉 기대승(1527∼1572)을 거명하며 시문학보다는 성리학의 대표적 학자라고 말했다.
허균보다는 조금 후배인 택당 이식(1584∼1647)은 대제학에 판서를 지낸 학자 문인인데, 그의 저서 ‘택당집’에서 “호남의 상도(上道)에는 일재 이항이 있고 하도(下道)에는 고봉 기대승이 있으며, 일재를 이어 건재 김천일(1537∼1593)이 있었다”라고 말하여 학자이자 시인이던 하서 김인후 이외에도 일재·고봉·건재라는 3대 학자를 거명하였다.
이수광·허균·이식보다는 1세기 뒤 대제학에 이조판서를 지낸 학자인 옥오재 송상기(1657∼1723)는 ‘옥오재집’이라는 문집에서 “박상·김인후·임억령·임형수·박순·유희춘·기대승·이항·김천일·고경명·백광훈·임제 등이 성리학·명덕(明德)·절의(節義)·문장으로 조선을 대표했다”라고 말했다. 학문·절의·문장가들이 호남에서 배출했음을 지적하고 또한 그 뒤로도 우산 안방준(1573∼1654)·소은 신천익(1592∼1661) 등의 학자가 배출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도록 그중 단 한 사람의 이름만 거명하여도 조선을 대표하던 시인이요, 학자요, 절의를 지킨 충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데, 그처럼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거의 동시대에 호남에서 배출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호남이라는 한 지역이 얼마나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지역이었는가. 더구나 조선 시대란 교통이 발달되지 못했고 통신 수단이 아주 미약하던 때여서, 정보의 부족으로 앞에서 거론하지 못한 학자나 문인들도 셀 수 없이 많았던 점으로 보면 실로 호남은 학문과 시문학으로 조선 왕조의 학술과 문화를 책임지고 있었던 지역임을 알게 된다.
조선 후기에도 호남에서 조선 3천재라는 신경준·위백규·황윤석 등 3대 실학자가 나왔다. 한말에는 조선의 마지막 최고 성리학자인 노사 기정진(1798∼1879)이 호남 출신이요, 최고 시인이던 매천 황현(1855∼1910) 또한 애국지사로서 문장가로 조선을 대표하던 수준이었다. 이만하면 조선 왕조에서 호남이 지닌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돌며, 역사는 바뀌고 변한다. 찬란했던 호남의 학술과 문화는 현양되거나 제대로 연구되지 못해, 현대인들은 진정한 호남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군사 독재가 계속되고, 특정 지역 출신 군인들이 권력을 독점한 뒤, 자기들의 출신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학술만 자랑하느라 찬란한 옛날의 호남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호남을 고립시키며 혐오에 가까운 악질적인 언사를 계속 남발하여 호남의 위상은 위축되고 축소되는 비운의 시대가 이어져 왔다.
‘천운순환 무왕불복’(天運循環 無往不復, 朱子)이라, 하늘의 운세는 돌고 돌아, 가 버리고 다시 오지 않는 일이 없다라고 했듯이, 그 찬란했던 호남의 학술과 문화가 영원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제 호남의 운세는 돌아오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도 설립되어 호남학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정치 지형도 바뀌면서 호남인들도 관계에 이름을 빛내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남도 북도의 소소한 갈등이나 지역 간의 자잘한 이해에서 훌쩍 뛰어넘어 호남 내부의 결속만 강화한다면,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 내기는 결코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무엇보다 학문에 더 돈독한 노력을 기울이고, 문화 창달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그 역사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선조(宣祖)에서 광해군 시절에 살았던 지봉 이수광(1563∼1628)은 그의 유명한 저서 ‘지봉유설’에서 “근래의 시인은 대부분 호남에서 나왔다”라고 말하여 유학의 영역인 시문학은 호남 출신이 조선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거명된 사람은 눌재 박상(1474∼1530), 석천 임억령(1496∼1568), 금호 임형수(1514∼1547), 하서 김인후(1510∼1560), 송천 양응정(1519∼1581), 사암 박순(1523∼1589), 고죽 최경창(1539∼1583), 옥봉 백광훈(1537∼1582), 백호 임제(1549∼1587), 제봉 고경명(1533∼1592) 등이다. 이들을 열거하여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은 호남 출신이 독점할 정도라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도록 그중 단 한 사람의 이름만 거명하여도 조선을 대표하던 시인이요, 학자요, 절의를 지킨 충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데, 그처럼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거의 동시대에 호남에서 배출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호남이라는 한 지역이 얼마나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지역이었는가. 더구나 조선 시대란 교통이 발달되지 못했고 통신 수단이 아주 미약하던 때여서, 정보의 부족으로 앞에서 거론하지 못한 학자나 문인들도 셀 수 없이 많았던 점으로 보면 실로 호남은 학문과 시문학으로 조선 왕조의 학술과 문화를 책임지고 있었던 지역임을 알게 된다.
조선 후기에도 호남에서 조선 3천재라는 신경준·위백규·황윤석 등 3대 실학자가 나왔다. 한말에는 조선의 마지막 최고 성리학자인 노사 기정진(1798∼1879)이 호남 출신이요, 최고 시인이던 매천 황현(1855∼1910) 또한 애국지사로서 문장가로 조선을 대표하던 수준이었다. 이만하면 조선 왕조에서 호남이 지닌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돌며, 역사는 바뀌고 변한다. 찬란했던 호남의 학술과 문화는 현양되거나 제대로 연구되지 못해, 현대인들은 진정한 호남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군사 독재가 계속되고, 특정 지역 출신 군인들이 권력을 독점한 뒤, 자기들의 출신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학술만 자랑하느라 찬란한 옛날의 호남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호남을 고립시키며 혐오에 가까운 악질적인 언사를 계속 남발하여 호남의 위상은 위축되고 축소되는 비운의 시대가 이어져 왔다.
‘천운순환 무왕불복’(天運循環 無往不復, 朱子)이라, 하늘의 운세는 돌고 돌아, 가 버리고 다시 오지 않는 일이 없다라고 했듯이, 그 찬란했던 호남의 학술과 문화가 영원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제 호남의 운세는 돌아오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도 설립되어 호남학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정치 지형도 바뀌면서 호남인들도 관계에 이름을 빛내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남도 북도의 소소한 갈등이나 지역 간의 자잘한 이해에서 훌쩍 뛰어넘어 호남 내부의 결속만 강화한다면,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 내기는 결코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무엇보다 학문에 더 돈독한 노력을 기울이고, 문화 창달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그 역사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