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혼자서 구매·수입·납품까지를 도맡아 하는 1인 무역회사의 사원이자 대표인 주인공. 그는 늘 혼자 식사를 한다. 까다로우면서도 소심한 성격 탓에 음식점 선택부터가 쉽지 않다. 이후의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만화는 그런 과정을 8페이지라는 짧은 분량 속에 차곡차곡 쟁여 넣었다. 그 짧은 분량 속에 음식점이 위치한 주변 환경과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음식 소개에서 평가까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한데 그 압축에 담긴 여운을 읽는 재미가 만만찮다. 만화가 인기를 끌자 급기야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드라마는 만화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몇 년째 제작되고 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내가 주목한 지점은 ‘미식’이 아니고 ‘고독’이었다. ‘나 홀로 식사’는 먹는 것에 심취하고 즐기는 행위의 정점일지도 모른다. ‘나 홀로 식사’는 생존과 탐닉이라는 두 가지 이질적인 목표를 내포하고 있다. 전자가 본능이라면 후자는 욕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밥을 먹는다면, 자칭 ‘미식가’란 부류는 본능과 더불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발현된 욕망까지도 충족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나 홀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식사는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의식은 형식과 절차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혼자 밥 먹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음식점 선택에서부터 메뉴의 결정, 식사의 순서, 평가의 방식 등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형식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혹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드러내기를 꺼릴 뿐, 자기만의 형식과 절차를 고수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지난해 한국 외식업계가 주목했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혼밥’과 ‘혼술’이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약 510만 가구로 27.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인 2005년과 비교해 무려 210만 가구가 늘었다. 심지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가 과거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최근에는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은 습관처럼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 속에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결속력이 남아 있다. 덕분에 아직은 ‘나 홀로 식사’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하다. 사회적인 시선뿐만 아니라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음식점의 구조 자체가 두 명 이상이 식사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고깃집이나 정식 집에선 여전히 혼자 식사하는 손님을 홀대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 홀로 식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닌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트렌드는 점점 변하는 데 반해,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은 하루빨리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다시 일본 만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고독한 미식가’보다 먼저 인기를 끈 만화가 ‘심야 식당’이다. 동경 신주쿠 유흥가의 한적한 골목길. 그 골목길 어귀에 자리한,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하는 말 그대로 심야 식당.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식당의 주인장이 선보이는 유일한 메뉴는 일종의 돼지고기 찌개인 ‘돈지루’ 달랑 하나.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메뉴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별난 식당이다. ‘심야 식당’은 식당을 찾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이 주문하는 메뉴에 얽힌 에피소드로 풀어 간다. ‘고독한 미식가’의 관찰자가 고객이라면 ‘심야 식당’의 관찰자는 주인장이다.

일본에서는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의 반응이다. 원작자와 출판사까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서의 인기가 높다. 심지어 SBS에서는 원작의 판권을 수입해 직접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다.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까지 ‘심야 식당’이 인기를 끄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두 나라 국민 모두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작고 따스한 것으로부터 위로받고자하는 속성이 있다. 서구 물질문명을 좇아 세상의 좋다는 것들은 다 들여왔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러니 지난 시절 내가 버렸던 것, 혹은 애써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갈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 줄 누군가, 내 심신의 공복을 채워 줄 밥 한 공기가 절실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심야 식당을 하나쯤 꿈꾼다. 심신이 지친 어느 날 밤. 술로 위로받기 위해 마셨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식당의 미닫이를 여는 순간. 누구나 두 가지 기대를 품기 마련이다. 내 공허함을 달래 줄 음식과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 그렇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완전한 ‘나 홀로 식사’를 꿈꾸지만 여전히 공허함의 한 부분은 음식이 아닌 사람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이고 그러니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혼밥과 혼술이 당장 세상을 바꾸기라도 할 듯 관심을 쏟던 미디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하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고독한 미식가는 증가할 것이다. 부디 올해는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심야 식당 하나쯤을 찾기를 소망한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