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귀향 스토리
2018년 01월 18일(목) 00:00 가가
팀에서 내쳐진 베테랑 야구 선수들의 모습은, 원치 않은 퇴사를 앞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계약에 따라 어긋남 없이 일했지만, 남은 것은 부담스러운 나이뿐. 같은 회사(팀)에는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이들이나, 연봉이 더 저렴한 후배들이 차고 넘친다.
회사의 계획은 치밀하고 합리적이다. 개인은 회사의 엄밀한 계획성 앞에 체스 판의 말처럼 놓여 명령에 따라야 하고, 그 명령이 이제 이 판에서 나가 달라는 것이어도, 그것을 따르지 않을 도리는 별로 없다. 현실 세계의 사람이 체스 게임의 말과 다른 점은, 어쨌든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든, 또 다른 회사든, 태어난 고향이든, 그 어디든 간에 사람은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다른 시작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이거즈의 스토브리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외국인 선수와 계약은 진즉에 마쳤고, 양현종에 이어 김주찬까지 계약에 성공했으므로 우승 전력이 그대로 남은 셈이다. 이제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개막을 준비하면 될 텐데 남은 소식이 하나 더 있으니, 1999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해 현대―LG를 거쳐 지금은 소속팀이 없는 내야수 정성훈의 영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영입이든 계약서에 양측의 사인이 박히기 전까지 100%란 없는 일이지만, 언론 보도라는 군불은 오늘 저녁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정성훈 선수가 조계현 단장과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누구도 놀라지 않을 온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성훈은 ‘해태’ 타이거즈 출신이다. 1980년에 태어났으니 우리나라 나이로 39세. 1999년 이후 18년 동안 통산 2135 경기에 출장했다. 그리고 1경기만 더 출전하면 양준혁을 넘어 프로 통산 경기 출장 1위 선수가 된다. 그는 송정초등학교, 무등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나온 그야말로 광주가 키운 유망주였지만, 입단 3년차에 박재홍과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로 적을 옮긴다.
정성훈은 기나긴 선수 생활을 증명하듯 임시 연고지 수원, 모기업의 위기와 팀 매각, 최초의 스폰서 운영 구단 등 산전수전을 겪다 FA 자격을 얻어 서울로 거처를 옮긴다. LG에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으나, 리빌딩을 (수년 째) 선언 중인 팀은 그를 방출한다. 돌고 돌아 다시 고향 팀에서 뛸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18년 만의 귀환이라니, 가히 그리스 비극의 ‘귀환 스토리’와 비견될 만한 스케일이지 않은가.
돌고 돌아서 기어코 순환선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연어 같은 이야기는 앞서 하나가 더 있다. 가난한 구단의 경제적 사정에 의해 부자 팀으로 현금을 얹어 트레이드된 초대형 투수 유망주, 임창용이 사연의 주인공이다. 해태 시절 마지막 우승의 순간 신인이었던 임창용은 헹가래의 끄트머리에서 쑥스러운 듯 박수를 치고 있는데, 2017년 우승의 순간에는 선수단의 최고참으로서 헹가래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실 그의 귀환은 정성훈의 그것보다도 모양새가 좋진 않았었다. 그가 속했던 팀은 도박 파문으로 급작스레 쑥대밭이 됐고 그리하여 우승을 놓쳤으며 여기에는 임창용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그는 소속 팀에서 방출된다. 수많은 우승 반지, 일본 리그를 점령하고 메이저리그까지 밟아 본 전설적인 투수가 해외 원정 도박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가 돌아올 곳도 결국 고향인 타이거즈밖에 없었다.
프로야구에서 과도한 지역주의는 때로는 화를 부르고는 한다. 특정 지역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선수단의 파벌이 생길 수도 있다. 능력보다는 연고에 의한 코치 선임으로 인해 팀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일부 팬들은 저열한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댓글에 프로 야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들을 감안하더라도 KBO리그의 지역 연고제는 꽤 튼튼하게 자리 잡은 편이다. 40년을 향해 가는 리그는 그간 나름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 왔으며 그 역사는 각 도시에 자리 잡은 팀과 그에 속한 선수, 그들을 응원하는 팬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른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 간 고향 출신의 선수가 은퇴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러 귀환하는 스토리 또한 길게 이어진 리그의 역사 중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되고, 한때의 영화와 긴 굴곡을 겪었던 광주라는 지역을 연고로 한 야구 팀이 가져야 할 특유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에이전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비즈니스에 입각한 언어일 것이다. 고향·귀향·열정 같은 심약한 단어들은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크게는 백억 원에 이르는 돈이 거래되는 현장이 그토록 센티멘털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람이 만들고 사람으로 진행되며 사람들이 모여 보는 스포츠이고, 우리 사람은 이야기라는 걸 참 좋아한다.
집 떠난 이가 이러저러한 굴곡을 겪고 다시 돌아오는 스토리는 여러 형태로 오래 재방송된 인기 있는 콘텐츠다. 정성훈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여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이 계약이 끝내 성사되진 않을지라도.
〈시인〉
회사의 계획은 치밀하고 합리적이다. 개인은 회사의 엄밀한 계획성 앞에 체스 판의 말처럼 놓여 명령에 따라야 하고, 그 명령이 이제 이 판에서 나가 달라는 것이어도, 그것을 따르지 않을 도리는 별로 없다. 현실 세계의 사람이 체스 게임의 말과 다른 점은, 어쨌든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든, 또 다른 회사든, 태어난 고향이든, 그 어디든 간에 사람은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다른 시작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돌고 돌아서 기어코 순환선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연어 같은 이야기는 앞서 하나가 더 있다. 가난한 구단의 경제적 사정에 의해 부자 팀으로 현금을 얹어 트레이드된 초대형 투수 유망주, 임창용이 사연의 주인공이다. 해태 시절 마지막 우승의 순간 신인이었던 임창용은 헹가래의 끄트머리에서 쑥스러운 듯 박수를 치고 있는데, 2017년 우승의 순간에는 선수단의 최고참으로서 헹가래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실 그의 귀환은 정성훈의 그것보다도 모양새가 좋진 않았었다. 그가 속했던 팀은 도박 파문으로 급작스레 쑥대밭이 됐고 그리하여 우승을 놓쳤으며 여기에는 임창용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그는 소속 팀에서 방출된다. 수많은 우승 반지, 일본 리그를 점령하고 메이저리그까지 밟아 본 전설적인 투수가 해외 원정 도박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가 돌아올 곳도 결국 고향인 타이거즈밖에 없었다.
프로야구에서 과도한 지역주의는 때로는 화를 부르고는 한다. 특정 지역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선수단의 파벌이 생길 수도 있다. 능력보다는 연고에 의한 코치 선임으로 인해 팀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일부 팬들은 저열한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댓글에 프로 야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들을 감안하더라도 KBO리그의 지역 연고제는 꽤 튼튼하게 자리 잡은 편이다. 40년을 향해 가는 리그는 그간 나름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 왔으며 그 역사는 각 도시에 자리 잡은 팀과 그에 속한 선수, 그들을 응원하는 팬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른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 간 고향 출신의 선수가 은퇴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러 귀환하는 스토리 또한 길게 이어진 리그의 역사 중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되고, 한때의 영화와 긴 굴곡을 겪었던 광주라는 지역을 연고로 한 야구 팀이 가져야 할 특유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에이전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비즈니스에 입각한 언어일 것이다. 고향·귀향·열정 같은 심약한 단어들은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크게는 백억 원에 이르는 돈이 거래되는 현장이 그토록 센티멘털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람이 만들고 사람으로 진행되며 사람들이 모여 보는 스포츠이고, 우리 사람은 이야기라는 걸 참 좋아한다.
집 떠난 이가 이러저러한 굴곡을 겪고 다시 돌아오는 스토리는 여러 형태로 오래 재방송된 인기 있는 콘텐츠다. 정성훈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여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이 계약이 끝내 성사되진 않을지라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