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채집에 의존하던 시절 이후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있었다. 겨울을 대비해야 했다. 땅이 얼어 더 이상 작물을 거둘 수 없는 시기에도 인간은 채소를 섭취할 필요가 있었다. 경험을 통해 두 가지 해법을 찾는다. 첫째는 갈무리한 채소를 말리는 방법이고 둘째는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다.

채소의 저장성을 높이는 인류의 보편적 방식은 한반도에서도 행해졌다. 봄부터 거둔 푸성귀를 말려 이듬해 정월대보름에 나물을 만들어 먹거나 가을에 거둔 시래기나 우거지를 말려 국과 찌개의 재료로 활용하는 방식은 원형 그대로 지금까지 답습되고 있다.

그런데 소금에 절이는 방식에서는 변이가 생겼다. 채소에 묻어 있던 미생물의 활동으로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더러는 군내가 나고 식초처럼 시어 버리기도 했지만 더러는 감칠맛과 개운한 향이 한층 나아졌다. 우리 선조들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 자연의 원리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김치의 탄생이다.

고려 시대까지 김치는 ‘지’(漬) 혹은 ‘저’(菹)라고 표기 했고 조선 초기에 와서 ‘침채’(沈菜) 혹은 ‘딤채’라고 표기하기 시작한다. 이후 딤채는 구개음화해 김치가 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발효의 원리를 헤아리고 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지와 딤채 사이 어디쯤으로 짐작된다. 부패가 되지 않도록 온도 관리를 하고 유산균의 번식을 돕기 위해 멥쌀이나 찹쌀로 풀을 쑤어 곁들이거나 젓갈을 사용했다. 단순한 채소 절임에 발효의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점점 김치다워졌다. 이후 김치는 두 번의 혁신을 거듭한다.

첫 번째 혁신은 고추의 수용이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도입된 고추를 받아들임으로써 붉고 매운 김치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두 번째 혁신은 결구배추의 개발이다. 한반도 토착 품종인 재래 배추는 줄기가 얇고 잎이 넓게 펼쳐져 있어 장기 보관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를 바꾼 사람은 우장춘 박사다. 온대식물인 중국 배추와 한대식물인 양배추를 육종해 결구배추를 개발한다. 잎과 줄기가 두껍고 속이 꽉 찬 결구배추는 소금에 절여도 장기 보관을 해도 그 아삭한 식감이 유지되었다. 더욱이 여름부터 서늘한 고랭지에서 재배해 가을이면 수확이 가능했다. 결구배추의 개발로 이전까지 김장의 조연에 불과했던 배추는 겨울 김장의 주연으로 탈바꿈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는 절임이라는 원형에 머무르지 않고 발효의 원리를 깨치고 외래의 것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혁신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원형을 고수하는 데 머물렀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소금에 절인 채소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장은 김치가 혁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이다. 겨울에 대비해 채소를 절이는 과정이 김장이라는 풍습으로 굳어졌다. ‘동국세시기’에는 “봄의 장 담그기와 겨울의 김장 담그기는 가정의 중요한 일 년 계획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농가월령가’에는 “시월은 맹동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부터 김장은 모든 가정의 연례행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각 가정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덕분에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찬란한 문화유산이 오히려 김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직업적인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끝낸 테이블을 습관적으로 관찰한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김치가 남아 있음을 본다. 한국인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김치가 왜 남을까? 음식이 남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음식점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대중음식점에서 제공되는 김치는 공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전문점이 아닌 다음에야 음식점의 입장에서는 김치를 직접 담그고 적당히 익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심지어 공짜로 제공하는 음식이니 원가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음식 장사를 하면서 김치를 반찬에서 뺄 수도, 김치 값을 따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가 대중음식점에서 먹는 대부분의 김치는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김치가 중국 땅에서 자란 배추로 중국인의 손맛으로 버무려지는 현실. 백번 양보해서 그 현실을 받아들인다 치자. 과연 이것은 김치로 불려도 마땅한 음식일까? 시중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김치의 가격은 10Kg에 1만 원∼1만5천 원 수준. 중국산 고춧가루 1Kg과 같은 가격이다. 아무리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된다고 한들, 상식적으로 이 가격으로는 김치다운 김치가 만들어질 수 없다. 유산균이 살아 있는 고유의 맛은커녕 그저 값싼 양념에 버무린 배추일 따름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김장이라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켜 나가는 한, 김치는 보전되고 있다는 착시 효과 때문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김치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인식 속에 김치 맛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무관심은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낳는다.

내 집 김장 김치만 안전하면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치 맛에 더 민감하고 까다로워져야 한다. 유산균이 살아 있는 아삭하고 알싸한 김치 맛을 잃으면 김장은 그저 번거로운 연례행사에 그칠 뿐이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