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말이면 우울할까
2017년 12월 25일(월) 00:00 가가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연말이 되면 평소보다 더 우울해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연말에 우울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2015년 12월에 직장인 515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 포털 사이트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응답자 84.8%가 ‘연말이 되면 마음의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한 해 동안 성취한 것이 없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3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 속의 상대적 소외감’이 22.3%로 그 뒤를 이었다.
즉, 연말에 우울한 이들은 결국 자신에게 기대가 높은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많이 하는 이들인 셈이다. 무언가 더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고, 남보다 더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우울한 것이다.
게다가 ‘연말’(年末)이라는 말 자체가 기분을 더욱 안 좋게 한다. 연말이란 말 그대로 한 해의 ‘끝’을 말한다. 이 ‘끝’이라는 말은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든 가능성이 닫힌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끝’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뒤를 되돌아본다. 시간의 시야가 확장되는 것이다. ‘시간 시야’(time horizon)란 시간을 바라보는 범위를 말한다.
평소에 우리의 시간 시야는 좁다. 오늘이나 내일 혹은 길면 일주일 정도이다. 매일 눈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연말이 돼서야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자신이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는 흔히 허무와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뭔가 새로운 변화도 없고, 성취한 것도 보잘 것 없고, 좋은 일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한 일 없이 또 나이만 먹는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허무감이나 자괴감은 달갑지 않은 ‘마음 손님’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이 마음 손님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왔는지 듣지 않고 빨리 내쫓으려고 한다. 그 흔한 방법은 분주함이다. 중요한 모임이든 아니든 여러 모임을 쫓아다니고, 과음과 과식 속에 지내다 보면 그 불편한 마음을 덜 의식한다. 그러다가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 이는 말만 들어도 근사하다. 연말의 칙칙한 기분을 걷어 낸다. 뭔가 시간이 많은 느낌을 주고, 왠지 새로운 해가 될 것 같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역시 착각이다. ‘새해’란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이를 피하고자 만들어 낸 발명품일 뿐이다.
시간은 저절로 새로워지지 않는다. 그냥 하루가 지난 것일 뿐이다. 해가 바뀌면 다시 시간 시야는 좁아진다. 우리는 또 그냥 눈앞에 있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또 1년의 끝에 다다른다. 그리고 우리는 또 허무함이나 자괴감에 빠진다. 놀랍도록 반복되는 풍경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없다면 삶은 새로워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말의 우울감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발판이다. 연말에 느끼는 허무함과 우울감이 심각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 안으로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왜 허무하고 우울한지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어떤 점이 후회되는지, 무엇을 했어야 하거나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자신의 기대나 목표가 현실적이거나 적절했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유한성을 자각해야 한다.
예상과 달리 나이 들수록 연령대 별 ‘행복 지수’는 전형적인 U자 모양이다. 통상 30∼50대가 가장 불행하고, 어릴 때와 노년이 가장 행복하다.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왜 노인들이 더 행복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끝’을 잘 느끼기 때문이다. 끝을 느끼기에 우울해지지만 그 우울함 때문에 다시 행복의 문이 열린다.
살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 이 끝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 때문에 노인들은 남은 시간을 유일한 것으로 여기고 소중하게 대한다. 젊을 때와 달리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남을 덜 의식한다. 마냥 행복을 미루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늘리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오늘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끝’을 잘 느끼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이다.
2015년 12월에 직장인 515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 포털 사이트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응답자 84.8%가 ‘연말이 되면 마음의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한 해 동안 성취한 것이 없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3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 속의 상대적 소외감’이 22.3%로 그 뒤를 이었다.
게다가 ‘연말’(年末)이라는 말 자체가 기분을 더욱 안 좋게 한다. 연말이란 말 그대로 한 해의 ‘끝’을 말한다. 이 ‘끝’이라는 말은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든 가능성이 닫힌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끝’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뒤를 되돌아본다. 시간의 시야가 확장되는 것이다. ‘시간 시야’(time horizon)란 시간을 바라보는 범위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이 마음 손님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왔는지 듣지 않고 빨리 내쫓으려고 한다. 그 흔한 방법은 분주함이다. 중요한 모임이든 아니든 여러 모임을 쫓아다니고, 과음과 과식 속에 지내다 보면 그 불편한 마음을 덜 의식한다. 그러다가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 이는 말만 들어도 근사하다. 연말의 칙칙한 기분을 걷어 낸다. 뭔가 시간이 많은 느낌을 주고, 왠지 새로운 해가 될 것 같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역시 착각이다. ‘새해’란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이를 피하고자 만들어 낸 발명품일 뿐이다.
시간은 저절로 새로워지지 않는다. 그냥 하루가 지난 것일 뿐이다. 해가 바뀌면 다시 시간 시야는 좁아진다. 우리는 또 그냥 눈앞에 있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또 1년의 끝에 다다른다. 그리고 우리는 또 허무함이나 자괴감에 빠진다. 놀랍도록 반복되는 풍경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없다면 삶은 새로워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말의 우울감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발판이다. 연말에 느끼는 허무함과 우울감이 심각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 안으로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왜 허무하고 우울한지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어떤 점이 후회되는지, 무엇을 했어야 하거나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자신의 기대나 목표가 현실적이거나 적절했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유한성을 자각해야 한다.
예상과 달리 나이 들수록 연령대 별 ‘행복 지수’는 전형적인 U자 모양이다. 통상 30∼50대가 가장 불행하고, 어릴 때와 노년이 가장 행복하다.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왜 노인들이 더 행복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끝’을 잘 느끼기 때문이다. 끝을 느끼기에 우울해지지만 그 우울함 때문에 다시 행복의 문이 열린다.
살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 이 끝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 때문에 노인들은 남은 시간을 유일한 것으로 여기고 소중하게 대한다. 젊을 때와 달리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남을 덜 의식한다. 마냥 행복을 미루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늘리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오늘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끝’을 잘 느끼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