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른 소리 하고 있네
2017년 11월 27일(월) 00:00 가가
[문요한 정신과 의사]
후배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병원장이다. 7∼8 년 전에 재정이 어려운 병원을 인수해서 한동안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워낙 실력 있고 성실한 친구라서 병원은 안정을 찾아 갔다. 그런데 정작 안정이 되고 나자 작년 말부터 일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너무 지친 것이 아닌가 싶어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다시 병원에 나가게 되면 진료하기가 싫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친한 동기와 선배들을 붙잡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나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한목소리로 “네가 배불러서 그래. 병원이 어려워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라는 것이었다. 후배도 인정했다. 그냥 직원들 월급 잘 주고, 집에 생활비만 갖다 줄 정도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 삶에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어 가던 후배가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체코어에 ‘리토스트’(Litost)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자신의 고통을 갑자기 깨닫게 된 사람의 고통’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한 고통은 정신적이다. 이를테면 나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사실은 착각이었음을 느낀 것이다. 리토스트는 실존적 고통을 말한다. 그동안 잡다하고 바쁜 일상에 갇혀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의 허무와 존재의 결핍을 느낀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히딩크의 이야기처럼 배고픔은 상징적 의미이다. 인간은 몸의 배고픔만큼이나 영혼의 배고픔을 느끼는 존재이다. 후배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배고픈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극심하게 존재의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애써 좋은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했다. 과연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타이티로 떠난 화가 폴 고갱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서머셋 몸(Somerset Maugham)이 쓴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고갱 대신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는 주식 중개인으로 처자식과 단란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가출을 한다. 부인은 바람이 나서 가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풀어 행방을 쫓는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는 파리의 여인숙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어느 날 강한 리토스트를 느꼈고, 그가 스스로 찾은 치료제는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에서 ‘달’과 ‘6펜스’는 각각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달’은 영혼을 그리고, ‘6펜스’는 물질의 비유일지 모른다. 작가는 인간이란 물질적 소유 이상으로 영혼의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몸의 허기를 느끼면 우리 눈에는 먹을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존재의 허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존재의 결핍감은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영혼에 기쁨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행위의 보상이나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라틴어에서는 ‘오티움’(Otium)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에겐 동식물을 기르는 것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암벽 등반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겐 춤이나 시작(詩作), 혹은 뜨개질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오티움을 발견한 사람만이 지금 행복할 수 있다. 지루하거나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이 숨 쉴 수 있는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오티움이야말로 삶의 불안, 권태, 허무,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묘약인 것이다.
나는 일상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오티움을 발견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건네고 후배와 헤어졌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후배 소식을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손을 놓았던 기타를 다시 잡고 새로운 밴드 멤버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이 그의 리토스트를 치유하고 그의 영혼에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체코어에 ‘리토스트’(Litost)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자신의 고통을 갑자기 깨닫게 된 사람의 고통’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한 고통은 정신적이다. 이를테면 나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사실은 착각이었음을 느낀 것이다. 리토스트는 실존적 고통을 말한다. 그동안 잡다하고 바쁜 일상에 갇혀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의 허무와 존재의 결핍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는 파리의 여인숙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어느 날 강한 리토스트를 느꼈고, 그가 스스로 찾은 치료제는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에서 ‘달’과 ‘6펜스’는 각각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달’은 영혼을 그리고, ‘6펜스’는 물질의 비유일지 모른다. 작가는 인간이란 물질적 소유 이상으로 영혼의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몸의 허기를 느끼면 우리 눈에는 먹을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존재의 허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존재의 결핍감은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영혼에 기쁨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행위의 보상이나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라틴어에서는 ‘오티움’(Otium)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에겐 동식물을 기르는 것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암벽 등반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겐 춤이나 시작(詩作), 혹은 뜨개질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오티움을 발견한 사람만이 지금 행복할 수 있다. 지루하거나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이 숨 쉴 수 있는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오티움이야말로 삶의 불안, 권태, 허무,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묘약인 것이다.
나는 일상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오티움을 발견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건네고 후배와 헤어졌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후배 소식을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손을 놓았던 기타를 다시 잡고 새로운 밴드 멤버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이 그의 리토스트를 치유하고 그의 영혼에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