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어도 창씨개명은 못한다
2017년 10월 23일(월) 00:00 가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리 민족이 당한 최고의 수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 나와 청나라에 무릎 꿇고 항복한 사실이다. 그보다 더 비참한 수모는 왜놈에게 나라를 빼앗긴 일이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도 참아내기 어려운 일인데, 민족의 근원과 뿌리까지 말살해버린 창씨개명이야말로 모든 수모와 수치 중의 극점이었다. 일제 말기, 조선인으로 누구라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면 왜정에 징발당하고, 젊은이들에게는 전쟁에 참여하라는 선동 열성원으로 활동하고, 앞장서서 창씨개명에 호응하는 사람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던 망국의 세월, 그래도 역사는 정의의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민족의 선구자들이나 애국지사들은 끝내 학병 동원의 연설에도 거부하고, 끝까지 창씨개명에도 거대한 거부를 감행했던 의인들이 있었다. 호남에서의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화순 출신 매하 양태승(梁泰承:1889∼1955) 교장 선생님이었다.
매하(梅下)는 1889년 화순의 다라실 마을에서 정암 조광조의 친구이자 기묘명현으로 명성이 높던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전통적 유학자의 가문에서 태어나 유교 경전으로 높은 교양을 얻었을 때, 나라의 운명은 이미 기울어, 뜻있는 젊은이들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17세이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국권이 상실되는 위기를 맞자, 매하는 솟구치는 의분심을 참지 못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유학 사상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새로운 세계와 학문을 접하기 위해 상경의 뜻을 품었다. 20세이던 1908년 마침내 상투를 싹둑 자르고 서울로 향했다.
새로운 학문을 배워야 민중을 계몽시킬 수 있고, 새로운 세계관을 지녀야 나라를 건질 방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서울에서 기본적인 신교육을 받던 중 22세이던 1910년 나라는 끝내 망해버리니, 눈물을 머금고 매하는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신학대학에서 종교철학과 교육철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조국 광복과 민족 해방의 밑거름을 쌓기 위한 민중 계몽과 민족 교육의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북 고창에 둥지를 틀고 학교 교육을 통한 민중·민족 교육을 실현하려고 민립학교 설립에 심혈을 기울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매하의 끈질긴 노력에 감복한 고창의 유지들이 거금을 희사하여 1919년 최초로 민립 고창고등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설립자이자 초대교장이던 매하는 전국의 명성 높은 교사들을 초빙하였다. 학교가 본궤도에 오르자 ‘북오산 남고창’이라는 호칭처럼 북의 오산고보, 남의 고창고보라는 양대 민족학교가 조국 광복의 터를 닦는 일을 해내게 되었다. 뒷날 대구의 계성학교에 교감으로 초빙되어 그곳에서도 민족 교육에 헌신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고향 광주로 낙향하여 사회단체에 관여하면서 조국 광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 정책은 더욱 험악하여 학병 동원 연설원을 강요하고 창씨개명까지 강제하자, 아무런 생계대책도 없이 온 가족을 이끌고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으로 숨어버린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우국지사의 지조를 지킬 때, 가족들의 고통은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때 매하의 큰 아들 양동만은 일본의 입교대학교 출신으로 함흥의 영생고보 교감으로 있어서 먹고는 살아갔는데,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한 학교에 재직할 수 없었다. 아들이 그 사정을 매하에게 말하자 “굶어 죽을지언정 창씨개명은 못한다”라는 엄명을 내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짐을 싸들고 속리산의 가족과 합하고 말았다.
그때가 어떤 때인데 매하는 그런 무서운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굳은 선비의 뜻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때 민족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병 동원 연설을 하고 또 창씨개명으로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던 때, 매하는 무슨 정신으로 그런 불행을 자초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민족의 선구자, 조선의 선비정신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해방 후 고관대작의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면서 보은농고 교장으로 계시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런 의인이자 민족교육의 선구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매하 양태승 평전’이 나온 지 오래이고, 최근에는 민족 교육의 공로자로 ‘국민훈장 무궁화장’까지 추서되었으나 세상은 아직도 그분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민중 계몽과 민족 교육의 뛰어난 선구자를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기려야 하리라.
매하(梅下)는 1889년 화순의 다라실 마을에서 정암 조광조의 친구이자 기묘명현으로 명성이 높던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전통적 유학자의 가문에서 태어나 유교 경전으로 높은 교양을 얻었을 때, 나라의 운명은 이미 기울어, 뜻있는 젊은이들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17세이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국권이 상실되는 위기를 맞자, 매하는 솟구치는 의분심을 참지 못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유학 사상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새로운 세계와 학문을 접하기 위해 상경의 뜻을 품었다. 20세이던 1908년 마침내 상투를 싹둑 자르고 서울로 향했다.
설립자이자 초대교장이던 매하는 전국의 명성 높은 교사들을 초빙하였다. 학교가 본궤도에 오르자 ‘북오산 남고창’이라는 호칭처럼 북의 오산고보, 남의 고창고보라는 양대 민족학교가 조국 광복의 터를 닦는 일을 해내게 되었다. 뒷날 대구의 계성학교에 교감으로 초빙되어 그곳에서도 민족 교육에 헌신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고향 광주로 낙향하여 사회단체에 관여하면서 조국 광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 정책은 더욱 험악하여 학병 동원 연설원을 강요하고 창씨개명까지 강제하자, 아무런 생계대책도 없이 온 가족을 이끌고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으로 숨어버린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우국지사의 지조를 지킬 때, 가족들의 고통은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때 매하의 큰 아들 양동만은 일본의 입교대학교 출신으로 함흥의 영생고보 교감으로 있어서 먹고는 살아갔는데,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한 학교에 재직할 수 없었다. 아들이 그 사정을 매하에게 말하자 “굶어 죽을지언정 창씨개명은 못한다”라는 엄명을 내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짐을 싸들고 속리산의 가족과 합하고 말았다.
그때가 어떤 때인데 매하는 그런 무서운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굳은 선비의 뜻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때 민족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병 동원 연설을 하고 또 창씨개명으로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던 때, 매하는 무슨 정신으로 그런 불행을 자초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민족의 선구자, 조선의 선비정신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해방 후 고관대작의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면서 보은농고 교장으로 계시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런 의인이자 민족교육의 선구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매하 양태승 평전’이 나온 지 오래이고, 최근에는 민족 교육의 공로자로 ‘국민훈장 무궁화장’까지 추서되었으나 세상은 아직도 그분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민중 계몽과 민족 교육의 뛰어난 선구자를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기려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