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반짝이는 것들에 대하여
2017년 10월 16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금목서 향기가 가만가만 번지는 도서관의 오후, 책을 읽다 눈을 감으면 살랑이는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위를 어름어름 놀다 가는 햇살이 곱다. 비밀의 정원 장독대 옆엔 구절초 껑충 키를 돋우고, 마당에 씨 떨어져 다시 피어난 봉숭아 꽃 무리가 환하다. 멋쟁이 나비가 날다간 배추 잎사귀 그늘은 그윽해서 숨을 쉴 때마다 가을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다. “아, 좋다! 이렇게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 안으로 무언가 깊숙이 들어오는 걸 느낀다. 살아 보면 우리는 이런 시간들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무엇인가가 우리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고 느낄 때의 충만함 같은 것.
가을에는 모두가 ‘따순’(따스운) 시간들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들, 기쁨을 주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좋겠다. 따순 햇볕 누리면서 마음을 따순 기운으로 덥히면 따순 볕과 함께 따순 마음이 된다. 따순 마음이 되면서 따순 말을 꺼낸다. 따순 말을 주고받으며 따순 생각을 길어 올린다. 따순 생각이 밑바탕 되어 따순 사랑을 일군다. 저마다 그 삶에서 빚어진 느낌과 생각과 뜻을 간직하고 몸에 스미는 기운에 따라 마음이 거듭나기를.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이 온통 제 빛깔을 내기 때문이다. 노란 빛깔 들녘, 하얀 빛깔 억새, 보라 빛깔 쑥부쟁이, 분홍 빛깔 며느리밥풀꽃처럼 쪽빛 하늘은 높고, 계곡으로 흐르는 물빛도 깊어진다. 어제의 나보다 맑고 깊은 눈빛을 지닌 사람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을이 좋은 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귀또리’(귀뚜라미) 울음소리 청량한 밤이면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 선다. 무한한 우주 속에 던져진 내가 보이고, 은하계의 한 모퉁이에서 몇 백만 년 전에 떠난 별빛이 이제 막 감지되는 그 특별한 순간처럼 정신이 반짝 깨어나는 것이다.
새삼 책 한 권 꺼내어 읽고 싶은 심사도 이 계절이 건네는 기운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부디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계절을 따라가며 살아가리라’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같이 이 계절의 여신이 주는 물을 달게 마시는 것도 인생의 지혜일 것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가난의 계절에는 노동으로 꿈을 꾸고/ 독재의 계절에는 온몸으로 저항하고/ 풍요의 계절에는 적은 소유로 충만하고/ 민주의 계절에는 국경 너머 눈물이 되고/ 탐욕의 계절에는 다시 광야의 목소리가 되리라.”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 세상은 온통 반짝이는데 사람살이는 빛을 잃어 가는 일이 태반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무너져 아픈 이들도 많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맞는 시간들, 먹고살기 힘든 것, 우정이 깨지는 것, 친구들과 세상이 나를 잊는 것,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상처 입고 분노하고 몸져눕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받고자 했으나 받지 못했던 그것을 두고 도대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무력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신을 다독여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안아 주는 일, 그것이 나에겐 이미 읽은 책 가운데 그 사람에게 건네주고픈 구절들을 적어 보내는 일이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한다. 당신은 그 모두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라든가 “거리 두는 연습… 말을 적게 하고 정서적으로 훌쩍 거리를 두어야 한다. 만일 하지 않으면 그들은 한없이 고약해진다” “역경은 씨앗의 껍질을 벗겨 내는 바람 같아서 우리 존재의 중심부만 남긴다. 그 중심부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같은 글들을 주고받는다. 며칠씩 앓고 난 이들이 위로가 되었다고, 덕분에 자기 삶을 더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의 삶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겠다고 글썽이며 답해 줄 때 그 대답은 찬란한 가을빛보다 더 반짝거린다. 누구라서 무너지지 않고 길을 잃지 않을까마는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는 말들에 기대어 힘을 내 보는 시간들은 소중하다. 계속 살아갈 힘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고통으로부터 자유는 문제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오니까. 일어난 일보다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더 상처 입히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반짝반짝’이라는 말에는 눈부신 빛이 숨어 있다. 이 숨어 있는 빛은 춤추길 좋아한다. 그때 세상에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너무 사소해서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소중한 것들, 자신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존재들의 밝고 따뜻한 에너지를 섬세한 시선으로 지켜볼 일이다.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순간이 있고, 반짝이는 순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아름다움이 된다.
당신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을 반짝이게 해 주는 존재는 어디 있는가? 당신 안에 숨어 있는 빛을 춤추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 세상은 온통 반짝이는데 사람살이는 빛을 잃어 가는 일이 태반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무너져 아픈 이들도 많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맞는 시간들, 먹고살기 힘든 것, 우정이 깨지는 것, 친구들과 세상이 나를 잊는 것,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상처 입고 분노하고 몸져눕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받고자 했으나 받지 못했던 그것을 두고 도대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무력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신을 다독여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안아 주는 일, 그것이 나에겐 이미 읽은 책 가운데 그 사람에게 건네주고픈 구절들을 적어 보내는 일이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한다. 당신은 그 모두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라든가 “거리 두는 연습… 말을 적게 하고 정서적으로 훌쩍 거리를 두어야 한다. 만일 하지 않으면 그들은 한없이 고약해진다” “역경은 씨앗의 껍질을 벗겨 내는 바람 같아서 우리 존재의 중심부만 남긴다. 그 중심부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같은 글들을 주고받는다. 며칠씩 앓고 난 이들이 위로가 되었다고, 덕분에 자기 삶을 더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의 삶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겠다고 글썽이며 답해 줄 때 그 대답은 찬란한 가을빛보다 더 반짝거린다. 누구라서 무너지지 않고 길을 잃지 않을까마는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는 말들에 기대어 힘을 내 보는 시간들은 소중하다. 계속 살아갈 힘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고통으로부터 자유는 문제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오니까. 일어난 일보다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더 상처 입히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반짝반짝’이라는 말에는 눈부신 빛이 숨어 있다. 이 숨어 있는 빛은 춤추길 좋아한다. 그때 세상에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너무 사소해서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소중한 것들, 자신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존재들의 밝고 따뜻한 에너지를 섬세한 시선으로 지켜볼 일이다.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순간이 있고, 반짝이는 순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아름다움이 된다.
당신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을 반짝이게 해 주는 존재는 어디 있는가? 당신 안에 숨어 있는 빛을 춤추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