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정신질환은 시골보다 도시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공황장애를 비롯한 각종 불안 장애는 더욱 더 그렇다. 왜 도시에서는 정신질환의 발병률이 높을까? 왜 도시인들은 더 불안할까? 밀집된 공간, 경쟁과 비교, 범죄, 외로움, 자연과의 단절, 소음과 각종 공해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또 하나의 이유로 직선의 건축물을 든다. 즉 도시인들은 매일 수많은 직선과 모서리들에 노출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지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첨단공포증’(尖端恐怖症)이라는 불안 장애가 있다. 이는 가위, 칼, 유리 조각, 책상모서리 등 날카로운 물체나 부분을 보면 심한 불안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부엌칼은 물론이고 젓가락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일부는 과거에 날카로운 물체에 다쳐서 크게 놀란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뚜렷한 사건이나 사고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공포증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날카롭고 직선적인 것에 대한 불안과 혐오를 가지게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에서 날카롭고 직선적인 것은 이빨, 뿔, 가시, 발톱, 절벽 등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주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를 촬영해 보면 일반인의 경우에도 뾰족한 모서리를 가진 사물을 볼 때에는 곡선의 물체를 볼 때보다 위험을 지각하고 반응하는 뇌의 편도체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직선을 싫어하고 곡선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취향인 것이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이는 오스트리아 건축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A4 용지 위에 자를 대고 그릴 수 있는 직선은 자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듯한 세모나 네모, 육면체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연에는 없다. 굽은 선과 뭉뚱그려진 네모나 세모, 그리고 비뚤비뚤한 동그라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이 사는 곳은 자연과 유리된 도시이다. 아침이면 직육면체의 아파트에서 나와 직선의 도로를 통해 직육면체의 건축물로 이동하여 직사각형 책상에 앉아 매일 생활한다. 도시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직선과 그 선과 선이 만들어 내는 날카로운 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삶도 점점 직선을 닮아가고 있다. 직선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직선의 최단거리를 계산하고, 앞만 보고 간다.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처럼 삶에서 늘 목표를 중시한다. 결국 직선적인 삶이란 결과 지향적이다. 이들에게 계획대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직선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큰 고통이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 위기에 대한 유연한 대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갖기 어렵다. 직선에서 벗어나는 일탈이나 우회, 그리고 기다림을 자꾸 실패, 비효율 그리고 손해로 느끼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도시의 직선형 인간은 신속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인간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직선형 인간은 시시비비를 정확히 따지고, 돌려 이야기하지 않고 좋고 싫은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빨리 결론을 맺거나 해결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 방식은 우리가 정작 바라는 친밀함과 연결감을 줄 수 없다. 결국 시시각각 변하고 다차원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서 직선형 인간은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도시는 이제 곡선으로 변모해야 한다. 그 옛날 한국의 버선코, 초가집, 항아리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자연스러운 곡선이 이제 우리의 생활환경에서 새롭게 재탄생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계는 직선과 곡선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할 말은 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며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물이 흐르는 것처럼 곡선의 궤적을 회복해야 한다. 막히면 돌아가고, 웅덩이가 나타나면 이를 먼저 채우고, 다른 물줄기와 만나 더 큰 흐름을 만들어 드넓은 바다로 가야 한다. 마치 순천만으로 굽이져 흘러 들어가는 동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