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부산)의 영구정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노후화되는 영광 한빛원전의 운명도 주목된다. 지역민의 이목이 쏠리는 지점은 지난 1986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한빛 1호기가 40년의 설계 수명을 마치고 연장가동 없이 오는 2025년 12월 가동을 영구히 멈추게 될 것인지 여부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1호기 바로 이듬해 2호기 수명만료가 예정된만큼 1·2호기 영구정지에 관한 지역여론 수렴과 영구정지 이후와 폐로(핵발전소 없애는 일)를 둘러싼 지역경제 발전 방향에 대한 준비도 모색해야한다는 전문가 조언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선공약으로 ‘단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을 감축해 원전 제로시대로 이행’을 골자로 원전정책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수명연장 없는 영구정지’에 무게가 쏠리지만, 원자력학계 중심으로 ‘(그럼에도) 원전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어 문재인 정부가 집권기간 동안 이를 관철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원안위 고리 1호기 영구정지…탈핵 신호탄?=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지난 9일 제 70회 원자력안전위원회의를 열고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안)’를 심의, 의결했다.

앞서 산업부 에너지위원회는 지난 2015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권고했고, 한수원은 이사회를 열어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운영변경허가 신청서를 원안위에 냈고 지난 1년여간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기술심사 및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사전검토가 이뤄졌다.

원안위는 이날 회의에서 사용후핵연료저장조 계통, 비상전력 계통, 방사성폐기물처리 계통 등 영구정지 이후에도 운영되는 설비 안전성을 검토한 결과,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되더라도 안전하게 유지·관리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안위가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결정함에 따라 국내 최초 상업원전인 고리 1호기는 이전의 수명연장 승인기간 만료일인 오는 18일 24시 이후 영구정지 된다.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되더라도 위험성은 상존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사용후핵연료저장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가결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원전의 경우 가동 중이던 원자로 뿐만아니라 정지 중이던 원전에서 보관 중이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을 냉각시키는 설비 계통의 전원공급이 차단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지적이 일었다.

원안위가 영구정지 의결 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이후에도 사용후핵연료저장조 냉각설비와 저장조 내 온도, 수위 감시를 위한 설비의 전원공급 계획과 안전성 확보 방안이 수립됐는지 여부를 집중 확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탈핵단체 등 시민사회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탈핵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며 환영하는 모습이나 원자력학계는 “원자력이 가진 편익이 적지 않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한국원자력학회,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등 원자력학계는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내 전기료가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점과 미세먼지·온실가스 걱정이 없다는 점, 안전성을 실증한 오랜 가동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우려와 달리 국내 원전은 지진에 강하게 설계됐고,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처분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내세웠다.

◇영광 한빛 1호기 2025년 수명만료?= 지역사회 관심은 무엇보다 설계수명(40년) 만료를 앞둔 한빛원전 1호기가 2025년 12월 12일까지 발전을 한 후 영구적으로 가동을 멈추느냐에 쏠린다.

그간 고리 1호기 등 국내 원전 일부가 설계수명(30, 40년)을 넘어 10년 정도 연장가동됐다는 점에서 한빛 1호기 재가동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1986년 상업운전에 돌입한 한빛 1호기는 오는 2025년 설계된 수명이 만료되는 것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한빛 2호기의 수명이 만료된다. 뿐만아니라 고리 2, 3, 4호기, 월성 1, 2, 3, 4호기, 한울 1, 2호기도 오는 2023∼29년 사이 수명 만료가 예정돼 있다.

신규 원전 건설 없이 수명만료가 곧 영구정지로 연결되고 국내 가동 중인 25기 가운데 12기가 2029년까지 수명이 만료되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집권 여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원전 제로시대’로 향하게 된다.

특히 올 2월 서울행정법원이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린 것도 원전사업자(한수원)와 수명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단체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당시 재판부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명연장 허가는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령에서 정한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고 결재 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등 원안위의 심의·의결 절차가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계속운전(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시 최신 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규정됐음에도 월성 2호기 설계기준으로 적용한바 있는 캐나다 최신기준을 월성원전 1호기의 평가에서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위해선 최신기준에 맞도록 설비를 대대적으로 보완해야한다는 의미로, 원전사업자에게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원자력전문가는 “새정부의 대선공약이 명확하다. 여기에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허가 취소 판결에서 보듯,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안전성 확보) 완벽하지 않으면 법원에 의해 언제든 수명연장 허가가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국내 원전에서 수명연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한빛원전이 자리한 광주전남의 경우 안전성뿐만아니라 영구정지 후의 지역경제를 고민할 시점이다. 폐로(핵발전소를 없애는 일)산업 자체가 일자리 갯수로 보나 사업 규모로 보나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라는 점을 지역사회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형호기자 kh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