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작약이 한창이다. 꼬리를 감추고 떠나는 봄을 배웅하는 여름 꽃이 마냥 화려하다.

옛부터 ‘꽃중의 왕’(花中之王)이라 부르던 모란은 화려함에서 첫손에 꼽히는 정원 식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빛깔과 모양을 가진 새 품종의 모란을 개발해 왔다.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모란이 있는가 하면 모란답지 않게 질박해 보이는 모란도 있다. 작약도 그렇다. 빛깔과 모양이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다른 종류이지만, 구분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꽃송이의 크기와 빛깔이 매우 닮았지만, 모란과 작약을 구분하는 정도는 그나마 가능하다. 작약은 꽃피고 열매 맺은 뒤에 땅 위로 드러났던 줄기가 모두 스러지지만, 모란은 한해살이를 마친 뒤에도 줄기를 그대로 남긴 채 겨울을 난다. 풀과 나무, 즉 초본식물과 목본식물의 차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은 끊임없이 새 품종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모양과 더 화사한 빛깔의 꽃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따른 결과다. 구별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알기 어려운 식물이 속속 등장한다. 복잡하다.

그 가운데 장미만큼 복잡한 식물도 없다. 셰익스피어는 장미를 놓고 ‘내가 아는 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꽃’이라고 했다. 장미는 보는 이의 혼을 빼앗을 만큼 황홀한 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사람에 의해 선발된 장미의 품종은 무려 2만5천 종류나 되고, 지금도 7천 종류의 장미 품종이 사람들 사이에서 피고 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새 품종의 장미를 선보이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지속하고 있으리라.

꽃잎을 겹꽃으로 변화시킨 건 물론이고, 흰색과 분홍색뿐이었던 야생 장미로부터 주황색·노란색·빨간색의 장미가 나왔다. 심지어 오랫동안 불가능하다고만 여겼던 파란색 장미꽃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에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어플로즈’라는 이름으로 선발한 장미 품종이 그것이다.

새로 나오는 식물의 품종은 제가끔 다른 특징을 가졌지만, 그들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꽃송이가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양과 빛깔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안 놓치는 게 생겼다. 야생 상태에서의 장미가 지녔던 본래의 건강, 즉 자생력은 하릴없이 약해졌다.

겹꽃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수술 가운데 몇 개를 꽃잎으로 변화시켰다. 번식의 핵심이 되는 꽃가루를 품은 수술이 줄어드니 생식 능력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향기의 근원 가운데 하나인 꽃가루가 적어져 향기도 줄었다. 야생에서와 달리 병해충이 많이 생기지만 스스로 이겨 내는 힘은 부쩍 떨어졌다. 먹을 걸 줄여 가며 가느다란 몸매를 얻는 대신 건강을 잃어야 하는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철저히 사람의 취향에만 맞추다 보니, 야생의 장미가 가졌던 본능의 상당 부분은 훼손되고 말았다.

조선 후기의 문인 박준원은 ‘꽃을 보다’(看花)라는 오언절구의 절창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양과 빛깔로 꽃을 보지만, 나는 오로지 생명의 기운으로 꽃을 바라본다(世人看花色/ 吾獨看花氣)”고 했다.

생명체의 진정성은 겉모습만으로 알 수 없다는 일갈이다. 시각만으로 미처 확인할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을 보아야 비로소 그의 진정한 알갱이에 다가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어서 그는 “그 생명의 기운이 온 천지에 가득 차오르면, 나 또한 한 떨기 꽃 되리라”(此氣滿天地/吾亦一花卉)라고 했다. 우리 사는 세상을 꽃처럼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는 건 겉모양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속 깊이 담긴 생명의 기운이라는 외침이다.

세상살이가 죄다 그렇지 싶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의 본질을 알아낼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행적만으로 사람을 닦아세워서는 안 된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연륜과 철학을 더 깊이 살펴야 한다.

나랏일을 맡아야 할 사람들의 행적이 입길에 회자된다. 부디 그들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철학과 진정성을 짚어 내는 지혜가 널리 발휘되기 바란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