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
2017년 04월 24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그녀가 처음 서류 한 장을 들고 찾아온 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점심시간이었고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오후에 보자고 했는데 그녀는 우두커니 밖에서 기다렸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미루고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동사무소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고, 노인장애인과에 서류를 넣기 전에 가능성을 타진하러 온 참이었다. 뇌병변 2급 판정을 받은 그녀를 선뜻 반기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웅얼웅얼 입안에서만 맴도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데 한참 걸렸다. 이력서를 내미는 손은 심하게 떨렸고,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기우뚱거렸고 걸음은 위태로워 보였다. 흔히들 도서관에서 일하면 우아하게 책 읽고 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쉼 없이 반납된 책을 제자리에 꽂아야 하고, 책을 한 보따리씩 들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며, 이용자들이 어질러 놓은 자리를 말끔히 원상 복구 하느라 쓸고 닦는 게 하루 종일이다. 막강한 체력과 신속하고 친절한 서비스정신, 책에 대한 전문성,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강도 높게 요구되는 일터인 셈이다.
모두들 보호자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말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책을 옮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걱정이라고 말이다. 인종, 학력, 성별, 종교, 그 어떤 것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 열린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생각하면 기회를 만들고 더불어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고 마주치고 함께 해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걱정이 하나의 편견이 될 수도 있으니 일단 해보자, 책 정리하는 일손 하나는 더없이 소중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아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그녀의 용기와 간절함도 한몫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덧 3년을 함께 일하고 있다. 해마다 서류 전형을 다시 밟고 기회를 얻으면 일자리를 배정받는 일이 반복되지만 걱정과 응원을 함께하며 일터의 가족이 되었다. 자잘한 부딪침도 많았고,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고 불만을 줄여 나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그녀의 행동이 수상했다. 눈이 퉁퉁 부었고 일찍 들어가겠다고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한 것이 예전의 ‘정서적 청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출근길 시내버스에서 기사가 빨리 안 탄다고 보호자 없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혼자 다닐 수 있다고 대답하자 버스에서 넘어지면 자기가 책임 못 지니 다음부터는 못 태워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창피하고 화도 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그래서 빈자리에 앉았는데 장애인석에 앉아야지 왜 일반석에 앉느냐고 또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버스에 탔던 승객들도 불편해서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얼굴이 화끈거려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리는 와중에도 버스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아침마다 이런 실랑이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생각할수록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울었다.
듣고 보니 울 일이 아니라 싸울 일이었다. 혼자 집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겠다는 그녀를 앉혀 놓고 승차 시간과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버스 회사에 사과를 요구했다. 시청 시내버스 관련 부서에도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관리 감독을 요구했다. 어떤 반응과 결과가 나오든지 우선 그녀가 느낀 부당함과 수치심을 우리가 함께 말해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정에 복받쳐 웅얼웅얼하는 목소리로는 저쪽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 우리는 또박또박 상황을 전달하면서 그녀의 심정이 되어 울컥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그때, 우리가 바로 그녀라는 걸 알았다.
몇 시간 뒤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를 재교육하겠다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버스 기사도 미안하다며 직접 사과를 했다고 그녀가 전해 주었다. 시간 맞춰 수많은 정류장을 통과해야 하는 버스 기사에게도 그녀의 승차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보호자 없이 버스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왜 안 했겠는가. 우리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같은 말이라도 조심하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승차 거부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쉽지 않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이 관계를 어긋나게 한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내 안에 자리 잡은 낯선 시선을 돌아본다. 사과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일까 하는 것도 숙제처럼 안겨온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우리에게도 비로소 우정이 싹트나 보다. 우정이란 나와 네가 제3의 낯선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니까 말이다.
모두들 보호자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말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책을 옮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걱정이라고 말이다. 인종, 학력, 성별, 종교, 그 어떤 것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 열린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생각하면 기회를 만들고 더불어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고 마주치고 함께 해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걱정이 하나의 편견이 될 수도 있으니 일단 해보자, 책 정리하는 일손 하나는 더없이 소중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아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그녀의 용기와 간절함도 한몫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창피하고 화도 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그래서 빈자리에 앉았는데 장애인석에 앉아야지 왜 일반석에 앉느냐고 또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버스에 탔던 승객들도 불편해서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얼굴이 화끈거려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리는 와중에도 버스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아침마다 이런 실랑이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생각할수록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울었다.
듣고 보니 울 일이 아니라 싸울 일이었다. 혼자 집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겠다는 그녀를 앉혀 놓고 승차 시간과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버스 회사에 사과를 요구했다. 시청 시내버스 관련 부서에도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관리 감독을 요구했다. 어떤 반응과 결과가 나오든지 우선 그녀가 느낀 부당함과 수치심을 우리가 함께 말해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정에 복받쳐 웅얼웅얼하는 목소리로는 저쪽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 우리는 또박또박 상황을 전달하면서 그녀의 심정이 되어 울컥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그때, 우리가 바로 그녀라는 걸 알았다.
몇 시간 뒤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를 재교육하겠다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버스 기사도 미안하다며 직접 사과를 했다고 그녀가 전해 주었다. 시간 맞춰 수많은 정류장을 통과해야 하는 버스 기사에게도 그녀의 승차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보호자 없이 버스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왜 안 했겠는가. 우리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같은 말이라도 조심하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승차 거부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쉽지 않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이 관계를 어긋나게 한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내 안에 자리 잡은 낯선 시선을 돌아본다. 사과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일까 하는 것도 숙제처럼 안겨온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우리에게도 비로소 우정이 싹트나 보다. 우정이란 나와 네가 제3의 낯선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