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목련 따라 곱게 피었던 진달래꽃도 떨어졌다. 꽃 지고 난 뒤 짙어지는 초록 잎 사이로 보랏빛 철쭉꽃이 원색의 향연을 이어 간다. 서둘러 꽃봉오리를 연 철쭉꽃, 빛깔도 생김새도 진달래꽃을 빼닮았다.

꼼꼼히 살펴보면 구별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꽃송이만으로는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반드시 구별해야 할 이유가 있다. 둘 중 하나는 먹어도 되지만 다른 하나는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진달래꽃은 화전을 부쳐 먹거나 술을 담가 먹기도 하지만, 철쭉꽃은 독을 품고 있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먹어도 좋은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했고, 먹으면 안 되는 철쭉꽃을 개꽃이라 했다. 오로지 먹느냐 못 먹느냐의 기준으로 참과 거짓을 나누었다.

자연물에 우리가 부여한 모든 이름이 그러하지만, 나무 이름에는 ‘사람살이’의 오랜 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먹고사는 일이 절실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하릴없이 식량을 찾아 헤맸고, 굶주린 배를 채워 주는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겼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루한 살림살이의 자취가 담긴 나무 이름은 또 있다. 지금 한창 물을 끌어올리며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는 조팝나무와 이팝나무가 그렇다.

가지마다 다닥다닥 피어나는 꽃송이가 꽃방망이를 이루는 조팝나무의 화려한 꽃을 보면서 우리의 옛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하얀 쌀밥에 노란 좁쌀을 얹어 지은 조밥이었다. 꽃송이 가운데에 점점이 피어난 노란 꽃술이 그렇게 보였다. 같은 꽃을 놓고, 서양 사람들이 ‘결혼하는 신부의 화환’(‘simple bridalwreath spiraea’)이라는 더없이 청초하고 화려한 이름을 부여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 얼마나 궁핍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팝나무도 그렇다. 나뭇가지 위에 소복이 피어난 하얀 꽃무더기를 보고 사람들은 하얀 쌀밥, 그것도 사발 위에 수북이 담은 고봉밥을 먼저 떠올렸다. 때마침 꽃 피어날 즈음이 모내기철인 까닭에 사람들은 탐스럽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날을 소망했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가을에는 이팝나무 꽃처럼 넉넉하게 먹을 쌀밥을 생각했다. 쌀밥의 다른 표현인 이팝을 나무 이름으로 붙인 연유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모내기에 나서야 했던 옛 사람들의 절박함이 묻어 있는 이름이다.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아 온 나무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은 ‘사람살이’의 모든 자취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참꽃·개꽃이 그렇고, 이팝나무·조팝나무가 그렇다. 나무 이름은 결국 우리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삶의 창이다.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러울 수 있는 이름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우리 삶의 자취를 보여 주는 이름이다. 남루해도 붙들어 안을 수밖에 없다.

지난 세기 최고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은 미완성 유고작 ‘센스 오브 원더’에서 “자연을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덧붙여 “이름을 식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처럼 가치 없는 목적도 없다”며 자연 대상으로부터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느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물도감을 뒤적이며 나무를 구별하기에 앞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나무에 담긴 의미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나무 이름 안에 담긴 생명의 의미, ‘사람살이’의 의미를 새겨 보라는 말이다. 우리 산과 들에 서 있는 나무 이름에 담긴 삶의 진정성을 짚어 보는 일은 그래서 이즈음에 꼭 필요한 일이지 싶다.

선거의 계절,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걷잡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진다. 가슴에 오래 남는 말보다는 아무런 잔향도 남기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더 많다. 풍성하게 벌어진 말잔치에서 정작 진정성을 담은 참된 말은 턱없이 적어 보인다.

절실한 경험도 깊은 사유도 없이 허투루 쏟아 내는 말투성이다. 제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높은 음량으로 과장해 봤자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오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나무 이름에 담긴 삶의 진정성을 절실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