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놀라운 분이다.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상가,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거인’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만큼 온갖 편견과 공격에 시달려 온 분도 없을 것이다. 거의 ‘왕따’를 당하듯 시달리셨다.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세력들, 언론으로부터의 공격도 있었다. ‘빨갱이’라는 프레임, ‘무능하다’는 프레임, ‘거짓말쟁이’라는 프레임, ‘대통령 병’이라는 프레임, ‘급진적’이라는 프레임, ‘이 사람만은 안 된다’라는 프레임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붙여졌던 온갖 꼬리표들을 모두 넘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변혁의 희망조차 살려내지 못할 뻔했다. 이것은 다만 민주 진보세력의 십년 집권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국민이 절망에 빠질 때,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떠올리는 믿음의 씨앗을 심어 준 것이다. 정치란 희망의 행위임을 증명했다.

나는 차기 정부가 김대중 정부 시대와 유사한 상황을 끝내 이겨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캐릭터를 다시 주목하고 싶다. 유권자들은 출렁이는 대선 구도 속에서 많은 고민을 하실 텐데,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떠올리고 김대중의 장점이 누구에게서 나타날까 판단하시기 바란다.

첫째는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한 위기의 상황이다. 탄핵 정국에 의해 조기 출발하는 차기 정부는 국정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인수 과정도 없이 곧바로 국정에 돌입해야 한다. 공약 그대로 ‘준비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경험과 고민과 혜량이 없이는 돌파가 불가능하다. 준비된 팀워크를 갖추고 있느냐, 같이 하는 세력이 얼마나 탄탄한가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둘째는 개혁 요구 분출의 시기에 ‘균형자’ 역할이 필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IMF 위기 극복’에 집중하느라 하고 싶은 정책을 맘껏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그는 복수를 하지도 않았으며 속도를 조절할 줄 알았고 힘을 나눌 줄도 알았다. 그는 원칙에 충실했으나 유연하게 운용할 줄 알았다. 그런 균형자 역할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기다.

셋째는 ‘개헌’을 절대적인 고리로 하여 새로운 체제에 대한 초석을 만드는 시기이다. 이것은 다만 권력구조에 대한 것뿐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평생의 과제인 ‘민주주의’를 어떻게 헌법에 더 높은 차원으로 녹여 내느냐의 과제이다. 개헌 따로, 국정 따로가 아니라 같이 가야만 하는 과제다. 민주적인 지도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넷째는 남북 평화와 공생을 회복해야 할 시기이다. 두말할 것 없이 김대중 대통령 최고의 어젠다이자 성과는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남북 공존의 정책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흔들어 왔지만 그보다 더 나은 남북 정책은 없다. 변화하는 세계 패권 속에서, 흔들리는 동북아 구도 속에서 어떻게 남북의 공존공영을 모색하느냐? 굳건한 의지가 없이는 안 될 과제다.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김대중 대통령의 역량이 필요할 때다. 이번에 나온 대선 후보들 가운데 김대중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찾아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다만 대통령 ‘김대중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권력이나 잡는 호기로 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 온 호남인들은 다시 한 번 무거운 ‘선택의 짐’을 지시리라 믿는다.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