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두 개의 컵라면, 그리고 염치
2017년 04월 06일(목) 00:00 가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흘렀다. 그리고 침몰한 지 1072일 만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직 찾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남아 있고 사고의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세월호는 영원히 우리 모두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더불어 내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해당 부처 주무 장관의 자격으로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현장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심지어 관료의 상징과도 같은 고급 의자에 앉아 편안하고 여유 있게 잡수셨다.
하필이면 그 장면이 언론사의 카메라에 잡혔다. 충격과 안타까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국민의 분노는 일제히 ‘컵라면을 먹는 장관’에게로 쏟아졌다. 아마도 그는 컵라면 하나로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일부에서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현장을 비울 수 없는 장관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인간에게 먹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사람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흘러 또 하나의 컵라면이 국민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설비업체 직원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 7개월 밖에 안 된 열아홉 살 청년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알려진 사연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입사 이후 과도한 업무에 치여 귀가하면 씻지도 못한 채 곯아떨어지는 날이 많았고, 끼니를 제때 챙길 여유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노동을 해서 청년이 사고를 당하기 전달에 받은 급여는 160만 원. 연장근로수당, 연차수당, 휴일근로수당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 중 100만 원을 대학 진학을 위해 매달 저축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 남겨진 청년의 가방에는 각종 작업 도구와 작업 일지 그리고 컵라면 하나가 있었다. 컵라면과 함께 발견된 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은 그 컵라면이 청년의 끼니였음을 짐작케 했다. 월급에 포함된 청년의 한 달 식비는 고작 9만 원. 하지만 그마저도 수시로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밥다운 밥을 먹을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열아홉 살 청년에게 컵라면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재난의 현장에서 고급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장관과 지하철역 어느 구석에서 언제 울릴지 모를 호출에 맘 졸이며 컵라면을 먹는 청년. 천 원 안팎의 값싼 컵라면이지만 두 사람의 끼니에 담긴 의미는 분명 달랐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은 애초에 생명이 있었다. 남의 생명을 끊음으로써 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 숙명을 부정하거나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한다. 염치야말로 남의 생명을 빌어 사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다.
염치의 핵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는 분별력이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던 장관은 이 점을 간과했다. 아마도 체육관 밖 어디에선가 초라한 모습으로 끼니를 때웠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어느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더라면, 장관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청년에게는 때와 장소를 가릴 선택권이 없었다. 선택권이 있는 자의 무분별함과 선택권이 없는 자의 무기력함.
맛은 주관적이지만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적이다. 때문에 먹는다는 행위에는 사회적인 통념이 적용된다. 장관의 컵라면에는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청년의 컵라면에는 사회의 책임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중은 장관의 컵라면에는 분노했고 청년의 컵라면에는 아파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다 보면, 파문이 인다. 파문이 일면 물결이 퍼진다. 물결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고 때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인간은 그렇게 물결을 넘나들며 성장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혹은 악착같이 살아간다.
음식은 물결 사이사이에 있다. 더러는 육신의 허기를 채워 주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욕망을 채워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음식은 물결 사이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염치다.
<맛칼럼니스트>
더불어 내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해당 부처 주무 장관의 자격으로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현장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심지어 관료의 상징과도 같은 고급 의자에 앉아 편안하고 여유 있게 잡수셨다.
사고 현장에 남겨진 청년의 가방에는 각종 작업 도구와 작업 일지 그리고 컵라면 하나가 있었다. 컵라면과 함께 발견된 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은 그 컵라면이 청년의 끼니였음을 짐작케 했다. 월급에 포함된 청년의 한 달 식비는 고작 9만 원. 하지만 그마저도 수시로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밥다운 밥을 먹을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열아홉 살 청년에게 컵라면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재난의 현장에서 고급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장관과 지하철역 어느 구석에서 언제 울릴지 모를 호출에 맘 졸이며 컵라면을 먹는 청년. 천 원 안팎의 값싼 컵라면이지만 두 사람의 끼니에 담긴 의미는 분명 달랐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은 애초에 생명이 있었다. 남의 생명을 끊음으로써 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 숙명을 부정하거나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한다. 염치야말로 남의 생명을 빌어 사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다.
염치의 핵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는 분별력이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던 장관은 이 점을 간과했다. 아마도 체육관 밖 어디에선가 초라한 모습으로 끼니를 때웠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어느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더라면, 장관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청년에게는 때와 장소를 가릴 선택권이 없었다. 선택권이 있는 자의 무분별함과 선택권이 없는 자의 무기력함.
맛은 주관적이지만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적이다. 때문에 먹는다는 행위에는 사회적인 통념이 적용된다. 장관의 컵라면에는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청년의 컵라면에는 사회의 책임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중은 장관의 컵라면에는 분노했고 청년의 컵라면에는 아파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다 보면, 파문이 인다. 파문이 일면 물결이 퍼진다. 물결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고 때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인간은 그렇게 물결을 넘나들며 성장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혹은 악착같이 살아간다.
음식은 물결 사이사이에 있다. 더러는 육신의 허기를 채워 주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욕망을 채워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음식은 물결 사이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염치다.
<맛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