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대선 후보와 어묵
2017년 02월 09일(목) 00:00 가가
미국에서 귀국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귀국 나흘 만에 부산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여권의 강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어묵 1번지’로 잘 알려진 부산 부평시장을 찾은 그는 예상대로 어묵을 먹었다. 당연히 그 모습은 다음 날 주요 지면과 포털을 장식했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비단 반 전 총장뿐만 아니다.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은 재래시장만 찾으면 무슨 공식처럼 어묵 꼬챙이를 든 모습을 연출한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어묵은 서민 코스프레를 위한 소품이 되었을까?
어묵처럼 생선 살을 으깨고 성형해 익혀 먹는 음식은 고대 중국과 조선시대 궁중음식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위완’(魚丸), 조선은 ‘생선숙편’(生鮮熟片)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음식이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 어묵은 약 1000년 전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으깬 생선 살을 반죽해 대나무 꼬챙이에 발라 구웠다. 그 모습이 마치 부들의 줄기 끝에 달린 열매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마보코’라 불렀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농업이 근간이었던 일본은 우리네 농악처럼 논밭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놀이를 즐겼다. 이를 ‘덴가쿠’(田樂)라 했다. 논밭에서 한바탕 놀다 보면 당연히 허기가 질 터. 들판에 모닥불을 피우고 꼬챙이에 두부·곤약·생선 따위를 끼워 된장을 발라 구웠으니 이 음식의 명칭 역시 덴가쿠라 불렀다.
그런데 들판에서 먹던 음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만들고 즐기던 음식이 누군가에게 만들어 바치는 음식이 되니 즐거움(樂)이 사라졌다. 대신 존경과 공손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 ‘오’(お)를 붙이게 된다. 너무나 익숙한 ‘오뎅’(お田)의 탄생 과정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자 수많은 일본인과 다양한 일본 문화가 한반도에 들어온다. 그 중에 일본의 대중 음식이었던 가마보코와 오뎅도 있었다. 가마보코는 조선인 사이에도 급속히 퍼졌다. 생선을 으깨서 조미료를 더해 기름에 튀겨 낸 가마보코는 배고픈 서민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가마보코의 인기는 지역과 시대를 초월했다. 70년대 이미 ‘국민 반찬’의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식량자급률이 50% 아래로 밑돌던 80년대 초에는 정부 차원에서 대체식량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근해 수산자원의 급격한 감소로 수포로 돌아갔다. 한편 ‘국민 반찬’다운 명칭이 필요했다. 가마보코·덴뿌라·아부라아게 등의 일본식 명칭에서 떡고기·생선떡 등의 과도기를 거쳐 생선으로 만든 묵이라는 뜻의 ‘어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 정착한 오뎅은 원래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릿집에서 내던 일품요리였다. 그러다 1930년대 대중적인 술안주로 자리 잡는다. 당시 서울 명동과 종로 일대에는 ‘정종’과 ‘오뎅’을 파는 오뎅집이 즐비했다. 이때 오뎅의 주역은 곤약과 두부였다. 가마보코는 그저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맛이 밍밍한 곤약과 두부 대신 쫄깃하고 감칠맛 넘치는 가마보코가 주연을 꿰차게 된다. 어느덧 대중들은 오뎅의 주 재료인 가마보코까지 오뎅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196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대중들 사이에서는 어묵이냐 오뎅이냐를 두고 반세기가 넘는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1960년대까지 포장마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안주는 참새구이였다. 하지만 1972년부터 시행된 수렵 금지 조치로 참새 수급이 어려워졌다. 참새가 빠진 자리를 오뎅이 대신한다. 한편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우리나라 경제는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진다.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오뎅·떡볶이·호떡·핫도그 등의 길거리 음식이 도심에 본격 등장한다.
오뎅의 입장에서는 시대의 불행이 곧 기회였던 셈이다. 이때부터 오뎅은 시장 어귀, 학교 앞 분식집, 도심의 버스정류장과 변두리 등 어디서나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70∼80년대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온 이들에겐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했다. 자고로 정치인의 퍼포먼스는 그림이 그럴듯하고 의미가 명확해야 한다. 떡볶이나 호떡은 대체 무얼 먹는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묵은 꼬챙이를 드는 순간 그림이 되고 의도가 분명해진다. 서민 코스프레의 소품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마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더 많은 후보들이 어묵 꼬챙이를 들 것이다. 언감생심 그들이 어묵과 오뎅에 관한 이 구구한 사연을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허구한 날 어묵 꼬챙이를 드는 모습은 이제 좀 진부하다. 특히 20∼30대 유권자들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다. 어차피 퍼포먼스라면, 최소한 요즘 유권자들이 즐기는 길거리 음식의 종류 정도는 파악하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
이미지 싸움은 결국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린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가운데 35.6%를 차지하는 20∼30대는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진부하냐 아니냐’를 눈여겨볼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비단 반 전 총장뿐만 아니다.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은 재래시장만 찾으면 무슨 공식처럼 어묵 꼬챙이를 든 모습을 연출한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어묵은 서민 코스프레를 위한 소품이 되었을까?
조선과 마찬가지로 농업이 근간이었던 일본은 우리네 농악처럼 논밭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놀이를 즐겼다. 이를 ‘덴가쿠’(田樂)라 했다. 논밭에서 한바탕 놀다 보면 당연히 허기가 질 터. 들판에 모닥불을 피우고 꼬챙이에 두부·곤약·생선 따위를 끼워 된장을 발라 구웠으니 이 음식의 명칭 역시 덴가쿠라 불렀다.
가마보코의 인기는 지역과 시대를 초월했다. 70년대 이미 ‘국민 반찬’의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식량자급률이 50% 아래로 밑돌던 80년대 초에는 정부 차원에서 대체식량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근해 수산자원의 급격한 감소로 수포로 돌아갔다. 한편 ‘국민 반찬’다운 명칭이 필요했다. 가마보코·덴뿌라·아부라아게 등의 일본식 명칭에서 떡고기·생선떡 등의 과도기를 거쳐 생선으로 만든 묵이라는 뜻의 ‘어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 정착한 오뎅은 원래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릿집에서 내던 일품요리였다. 그러다 1930년대 대중적인 술안주로 자리 잡는다. 당시 서울 명동과 종로 일대에는 ‘정종’과 ‘오뎅’을 파는 오뎅집이 즐비했다. 이때 오뎅의 주역은 곤약과 두부였다. 가마보코는 그저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맛이 밍밍한 곤약과 두부 대신 쫄깃하고 감칠맛 넘치는 가마보코가 주연을 꿰차게 된다. 어느덧 대중들은 오뎅의 주 재료인 가마보코까지 오뎅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196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대중들 사이에서는 어묵이냐 오뎅이냐를 두고 반세기가 넘는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1960년대까지 포장마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안주는 참새구이였다. 하지만 1972년부터 시행된 수렵 금지 조치로 참새 수급이 어려워졌다. 참새가 빠진 자리를 오뎅이 대신한다. 한편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우리나라 경제는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진다.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오뎅·떡볶이·호떡·핫도그 등의 길거리 음식이 도심에 본격 등장한다.
오뎅의 입장에서는 시대의 불행이 곧 기회였던 셈이다. 이때부터 오뎅은 시장 어귀, 학교 앞 분식집, 도심의 버스정류장과 변두리 등 어디서나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70∼80년대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온 이들에겐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했다. 자고로 정치인의 퍼포먼스는 그림이 그럴듯하고 의미가 명확해야 한다. 떡볶이나 호떡은 대체 무얼 먹는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묵은 꼬챙이를 드는 순간 그림이 되고 의도가 분명해진다. 서민 코스프레의 소품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마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더 많은 후보들이 어묵 꼬챙이를 들 것이다. 언감생심 그들이 어묵과 오뎅에 관한 이 구구한 사연을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허구한 날 어묵 꼬챙이를 드는 모습은 이제 좀 진부하다. 특히 20∼30대 유권자들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다. 어차피 퍼포먼스라면, 최소한 요즘 유권자들이 즐기는 길거리 음식의 종류 정도는 파악하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
이미지 싸움은 결국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린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가운데 35.6%를 차지하는 20∼30대는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진부하냐 아니냐’를 눈여겨볼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