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는 유명한 간신 계보들이 있다. 당나라의 경우에는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와 덕종(德宗) 때의 노기(盧杞) 등을 그런 인물로 꼽는다. 간신들의 공통 특징은 윗사람들의 마음을 기막히게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당 덕종(德宗)이 이면(李勉)에게 “여러 사람들이 모두 노기가 간사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왜 그것을 알지 못하는가? 경은 그 실상을 아는가?”라고 물었다. 이면은 “천하 모두가 그 간사함을 알고 있는데 오직 폐하만 모르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간사하다는 까닭입니다”라고 대답했다.〈구당서(舊唐書) ‘이면 열전’〉

인재를 구한다는 소리는 높지만 정작 인재가 등용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등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중시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한(漢) 무제(武帝:재위 서기 전 157∼서기 전 87)가 하루는 안사(顔駟)라는 백발의 낭관(郞官)을 만났다. 백발이 되도록 중간 직위의 낭사에 머물고 있는 안사에게 “언제 낭관이 되었느냐”고 묻자 문제(文帝:재위 서기 전 180∼서기 전 157) 때라고 대답하였다. 무제가 중용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제께서는 문(文)을 좋아하셨는데 신은 무(武)를 숭상했고, 경제(景帝)께서는 노인을 좋아하셨는데 신은 그때 아직 젊었고, 폐하께서는 젊은이를 좋아하시는데 신은 이미 늙었습니다. 그래서 삼세(三世)에 걸쳐서 불우하게 되었습니다.”〈문선(文選) ‘사현부’(思玄賦)〉

고려 후기의 문신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임금이 어떠한 것을 숭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도 할 것이다”〈가정집(稼亭集)〉 라고 말한 것도 인재 등용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임금의 성향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모의 경우이고 천하 정세를 보는 국사나 왕사 같은 경우는 등용해 준다고 해서 무조건 나가지는 않는다. 또한 임금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도 않는다. 공자 역시 쓴소리를 자주 했기에 군주들이 쓰지 않았던 비운의 지식인이었다.

노(魯)나라 임금 정공(定公)이 공자에게,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 말이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 노릇 하기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만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만일 임금의 말이 착해서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고 하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이 착하지 않은데도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을 것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논어(論語) ‘자로’(子路)〉 군주의 말이 착하지 않은데도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라를 잃게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군주의 말에 아무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주위에 ‘예예’를 읊조리던 간신들만 가득 차서 귀에 거슬리는 일체의 간언을 용납하지 않았던 정권의 말로를 생생하게 목도 중이다. 또한 블랙리스트 파문에서 보듯이 ‘예예’를 읊조리는 간신들이 얼마나 반인간적, 반문명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지도 새삼 목도 중이다.

도유(都兪)라는 말이 있다. 도유우불, 또는 우불도유의 준말인데 임금과 신하가 허심탄회하게 논쟁하면서 정사를 논의하는 것을 뜻한다. 서경(書經) ‘요전’(堯典) 등에 나오는 말인데 임금과 신하가 서로 정사를 논의할 때 상대의 의견에 찬성할 때에는 도(都)·유(兪)라고 말하고, 반대할 때에는 우·불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현 정권처럼 ‘예예’만을 용납했던 ‘도유 정권’의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한국 사회처럼 각종 기득권 카르텔이 심한 나라에서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순간 온갖 박해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각종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다수 포진한 ‘우불 정권’이야말로 객관적으로 성공한 정권이 될 것임은 자명하지만 과연 그런 정권이 들어설지 두고 볼 일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