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부대찌개, 너의 정체는?
2017년 01월 12일(목) 00:00 가가
부대찌개는 과연 한국의 전통음식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한국인들이 당황스러워 한다.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명쾌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대찌개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음식의 역사를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그는 2008년 대통령 당선 직후 고향인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낸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관심의 대상되었다. 캐주얼한 복장으로 와이키키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모습까지 전 세계에 소개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가 골프를 치는 동안 간식으로 먹었던 음식까지 화제가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와이의 대표적인 대중 음식인 ‘스팸무스비’였다.
스팸무스비는 밥 위에 간장 소스를 발라 구운 스팸 한 조각을 올리고 김으로 감싼 음식이다. 얼핏 보면 일본 음식 같지만 그 내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양념한’(spiced)과 ‘햄’(ham)의 합성어인 스팸(SPAM)은 1937년 미국의 호멜이라는 식품 회사에서 돼지고기 어깨살을 처분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요긴하게 사용됐던 것을 지금은 하와이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다.
하와이는 전 세계에서 1인당 스팸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연간 7백만 개 이상을 소비한다. 매년 4월이면 ‘스팸 잼’이라는 축제가 열릴 정도로 스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하와이 주민들이 스팸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태평양함대가 주둔하면서부터다. 당시 미군에게 배급되던 식량 중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스팸이었다.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스팸이 확산됐다.
하와이 이주민중 단일국가로는 필리핀 출신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일본 이민자들이다. 일본인은 하와이 전체 인구의 약 13퍼센트에 이른다. 결국 스팸무스비는 스팸을 좋아하는 폴리네시아인과 필리핀인 그리고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 등 하와이를 구성하는 3대 민족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심지어 이름조차 스팸이라는 제품명과 주먹밥을 뜻하는 일본어 ‘무스비’의 합성어다. 하와이의 전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식이 오늘날 하와이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은 그 자체로 하와이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정도 되는 인물의 공개적인 행동에는 반드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스팸무스비가 상징하는 문화적·민족적 다양성은 오바마의 삶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이다. 인종적으로 복잡한 배경을 가진 그는 하와이에서 성장 후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거쳐 시카고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그가 언론에 노출될 것을 뻔히 알고도 스팸무스비를 먹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포용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미국적 가치를 지향하겠다는 나름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세상 모든 음식의 서사는 원형과 전통을 내포한다. 원형은 신화나 종교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다. 이에 반해 전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한국 음식의 원형은 쌀을 비롯한 곡물을 제분하지 않고 낱알 그대로를 익혀 먹는 밥을 중심으로 국과 찌개 그리고 발효음식 등의 찬을 곁들여 먹는 형태다. 이러한 형태는 족히 천 년 이상 변하지 않고 우리의 식생활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국·찌개·발효음식 등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고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물을 오늘날 전통이라는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음식의 가장 대표 선수 격인 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치의 원형은 채소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소금에 절이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다 미생물에 의한 젖산발효를 발견하게 되고 조선 후기에 붉고 매운 고추와 속이 꽉 찬 결구배추를 일본과 중국을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김치가 완성됐다. 만약에 변화를 전제로 한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원형만 고집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소금에 절인 채소만 먹고 살아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부대찌개의 정체성 또한 분명해진다. 찌개를 구성하는 요소에 제 아무리 햄·소시지·라면 등 이국적인 재료가 쓰였다 한들 찌개라는 원형이 변하지 않는 이상 부대찌개는 의심할 바 없는 한국 음식이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는 단순히 공간적인 영토 확장의 문제가 아니다. 수구적인 인식의 틀 속에 갇힌 한국 음식을 해방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통은 혁신과 변화를 거듭하며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이질적인 식재료와 조리법이 섞이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한국 음식의 원형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역사와 내성을 갖고 있다. 우리들 각자의 인식 속에서 한국 음식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새로운 한식 세계화는 이러한 자신감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맛칼럼니스트>
이제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그는 2008년 대통령 당선 직후 고향인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낸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관심의 대상되었다. 캐주얼한 복장으로 와이키키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모습까지 전 세계에 소개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가 골프를 치는 동안 간식으로 먹었던 음식까지 화제가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와이의 대표적인 대중 음식인 ‘스팸무스비’였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정도 되는 인물의 공개적인 행동에는 반드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스팸무스비가 상징하는 문화적·민족적 다양성은 오바마의 삶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이다. 인종적으로 복잡한 배경을 가진 그는 하와이에서 성장 후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거쳐 시카고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그가 언론에 노출될 것을 뻔히 알고도 스팸무스비를 먹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포용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미국적 가치를 지향하겠다는 나름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세상 모든 음식의 서사는 원형과 전통을 내포한다. 원형은 신화나 종교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다. 이에 반해 전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한국 음식의 원형은 쌀을 비롯한 곡물을 제분하지 않고 낱알 그대로를 익혀 먹는 밥을 중심으로 국과 찌개 그리고 발효음식 등의 찬을 곁들여 먹는 형태다. 이러한 형태는 족히 천 년 이상 변하지 않고 우리의 식생활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국·찌개·발효음식 등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고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물을 오늘날 전통이라는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음식의 가장 대표 선수 격인 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치의 원형은 채소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소금에 절이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다 미생물에 의한 젖산발효를 발견하게 되고 조선 후기에 붉고 매운 고추와 속이 꽉 찬 결구배추를 일본과 중국을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김치가 완성됐다. 만약에 변화를 전제로 한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원형만 고집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소금에 절인 채소만 먹고 살아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부대찌개의 정체성 또한 분명해진다. 찌개를 구성하는 요소에 제 아무리 햄·소시지·라면 등 이국적인 재료가 쓰였다 한들 찌개라는 원형이 변하지 않는 이상 부대찌개는 의심할 바 없는 한국 음식이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는 단순히 공간적인 영토 확장의 문제가 아니다. 수구적인 인식의 틀 속에 갇힌 한국 음식을 해방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통은 혁신과 변화를 거듭하며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이질적인 식재료와 조리법이 섞이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한국 음식의 원형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역사와 내성을 갖고 있다. 우리들 각자의 인식 속에서 한국 음식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새로운 한식 세계화는 이러한 자신감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맛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