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레저 스포츠로 각광을 받는 번지점프는 원래 남태평양 청소년들의 성인식이었다. 청소년은 성인식을 통해 공포감을 이겨 내고 어른이 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강제적인 성인식이 없어졌다. 그 대신 길고 긴 경쟁, 고통의 과정을 겪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에 시달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때문에 시달린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계속 경쟁에 시달리지만 화끈하게 어른이 되는 경험은 없다. 과거에는 군대 생활이나, 결혼 후 시집에서 겪는 고통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결국 어른이 되는 시점은 계속 연기되고 30대∼40대가 되어도 미성숙한 어른들이 많아진다.

이런 시대에 배낭여행은 성인식의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다. 말이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숙소를 찾아내고, 험한 여정을 개척하는 과정은 모험이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모험을 이겨 낸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보다도 더 큰 모험은 삶에서 발생한다. 경쟁은 끊이질 않는다.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병에 시달리기도 하며 언젠가는 직장에서 나와 고령화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90살을 사네, 100살을 사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고통과 고뇌는 파도처럼 다가온다. 중년이 넘어가면 다시 두려움이 몰려온다.

수명이 짧을 때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성인식을 치렀지만 요즘엔 50대쯤에 다시 한 번 통과의례를 겪게 된다. 50대, 60대는 예전처럼 노인 대접도 받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젊은이도 아니다. 어중간한 나이인데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때 다시 모험 정신이 필요하다. 19세기 후반의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진정한 모험이란 확실하지 않은 가능성과 숙명과 우연에 모든 것을 걸고, 뒤에 있는 모든 다리를 끊은 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 나타나 자신을 인도하기라도 할 듯이 안갯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시도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감정으로 자신의 모험을 정당화한다.

배수진을 치고 용감하게 앞길을 가면서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자신을 인도할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앞으로 나가는 행위를 모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오지를 가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험한 길로 나서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자기 길에서 강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하루하루 땀 흘리는 것도 모험이다. 모든 것을 다 가슴에 끌어안고 전진하는 것, 그게 모험이다.

짐멜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이 세상이 우리의 고향이 아니라 단지 객으로 머무는 장소가 된다면 삶 전체는 모험으로 다가오며, 이방인은 오늘 와서 내일 가는 방랑자가 아니고,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방랑자다.”

어차피 이 세상은 우리의 고향이 아니며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것,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 결혼을 하는 것,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등 그 모든 게 여행이고 모험이다. 우리의 삶은 어디서 툭 끊어질지 모른다. 멀쩡하게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듣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모든 순간이 위험 속에 있고 사방이 함정이다. 내일도 알 수 없고 모레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다가도 종종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방인이고 여행자이며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문득,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고 더 용감해진다.

어차피 여행길,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불안하고 모호한 길이다. 인생에 해답이란 없고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기가 선택한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용감한 모험가가 된다. 불안하고 혼란한 시대일수록 우리에게는 모험 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