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 애국심과 시민의식
2016년 12월 15일(목) 00:00 가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6주에 걸쳐 매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벌어진 촛불 집회의 힘이다. “어둠을 탓하기에 앞서 작은 촛불을 들라!”는 말이 있지만 그 작은 촛불 수백만이 모여 어둠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 주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정부, 의회, 사법기관, 기업,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라는 6자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의 내용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주권을 가진 국민이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을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사법기관은 국민들의 선거가 아니라 고시를 통해 선발된 법관들로 구성된다. 기업은 시장의 영역에서 합법적 이윤을 추구한다. 언론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을 보도하며 공적 의제를 형성한다. 시민사회는 건전한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로 이루어지며 공론을 형성하며 공익을 추구한다. 이 6자가 각자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유지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이전까지 파행을 거듭했다. 헌법을 개정하면서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하던 이승만 정권은 4·19로 붕괴했고,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5·16 군사정변으로 와해되었다.
1963년 제3공화국이 시작되었지만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제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유정회를 만들어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었다. 그것이 4공화국이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집권한 군부에 의해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5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다시 대통령을 국민이 직선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6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 직선은 거부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최소 원칙이 되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에 말한 6자의 견제와 균형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1948년 건국 이후 정부는 의회와 사법부를 자신의 보조기관이나 시녀로 만들어 왔고 언론의 자유를 구속했으며 기업과 유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민사회의 성장을 막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유신체제야말로 왜곡된 6자관계를 결정적으로 굳혔다. 그 시기에 정부는 다양한 지원정책과 규제를 통해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정경유착이라는 관행을 만들었고, 언론을 통제하며 대통령과 체제의 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저항을 억압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지배한 5공은 그런 유신체제의 후속편이었다.
6공이 시작되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태동했고 1990년대는 한국 시민운동의 황금기였다.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지도자들이 개혁 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시민사회의 리더십은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시민운동의 활력은 점점 더 약화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던 사법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사법부는 청와대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은 점차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였지만 정경 유착의 관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SNS를 비롯해 직접통제가 불가능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주요 일간지와 종편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은 건강한 공론 형성의 장이 되기에는 미흡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공개되고 대통령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촛불 시위가 7주 이상 계속된 것이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앞서 말한 6자관계를 바르고 굳건하게 세울 중장기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다가올 대선에서 능력과 비전을 갖춘 민주적 리더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 그 후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의 과다한 권한을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견제하고, 정부와 기업 사이의 부패 고리를 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비판적 여론형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민 의식과 시민 참여의 활성화다. 평시에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민주적인 공적 질서가 위협받을 때면 분연히 떨쳐 일어나 행동하는 시민이 없었다면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극기를 앞세운 애국심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 의식 없는 애국심은 맹목적이고 위험하다.
물론 애국심 없는 시민 의식은 공허하다. 촛불 시위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서 권리 의식과 비판 의식을 갖춘 시민들이었다. 책임 의식을 갖춘 애국시민들이 정의감으로 살아 움직일 때 건강한 6자관계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작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사법기관은 국민들의 선거가 아니라 고시를 통해 선발된 법관들로 구성된다. 기업은 시장의 영역에서 합법적 이윤을 추구한다. 언론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을 보도하며 공적 의제를 형성한다. 시민사회는 건전한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로 이루어지며 공론을 형성하며 공익을 추구한다. 이 6자가 각자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유지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이전까지 파행을 거듭했다. 헌법을 개정하면서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하던 이승만 정권은 4·19로 붕괴했고,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5·16 군사정변으로 와해되었다.
6공이 시작되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태동했고 1990년대는 한국 시민운동의 황금기였다.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지도자들이 개혁 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시민사회의 리더십은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시민운동의 활력은 점점 더 약화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던 사법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사법부는 청와대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은 점차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였지만 정경 유착의 관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SNS를 비롯해 직접통제가 불가능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주요 일간지와 종편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은 건강한 공론 형성의 장이 되기에는 미흡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공개되고 대통령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촛불 시위가 7주 이상 계속된 것이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앞서 말한 6자관계를 바르고 굳건하게 세울 중장기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다가올 대선에서 능력과 비전을 갖춘 민주적 리더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 그 후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의 과다한 권한을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견제하고, 정부와 기업 사이의 부패 고리를 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비판적 여론형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민 의식과 시민 참여의 활성화다. 평시에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민주적인 공적 질서가 위협받을 때면 분연히 떨쳐 일어나 행동하는 시민이 없었다면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극기를 앞세운 애국심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 의식 없는 애국심은 맹목적이고 위험하다.
물론 애국심 없는 시민 의식은 공허하다. 촛불 시위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서 권리 의식과 비판 의식을 갖춘 시민들이었다. 책임 의식을 갖춘 애국시민들이 정의감으로 살아 움직일 때 건강한 6자관계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작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