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대해 투덜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험한 자연에 갔을 때 도시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었다. 원시 자연림이 그득한 보르네오 섬에서 역설적으로 도시의 소중함을 깨달았었다. 보르네오 섬 사바 주에 있는 해발 4102미터의 키나발루산 등반, 산다칸이란 도시 근처에 있는 오랑우탄 재활지, 근교 바다의 섬에서 거북이가 알 낳는 것을 볼 때까지는 대자연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좋았다.

그러나 산다칸에서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두세 시간 들어간 원시림의 어느 캠프에서 묵는 동안엔 너무도 힘들었다. 조그만 여행사에서 설치해 놓은 캠프에서 정글 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었는데 오두막에는 문도 창문도 없고, 지붕과 구멍 난 모기장만 있었다.

너무 허름해서 난감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날 밤, 보트를 타고 사파리를 하는 시간은 좋았다. 고요한 어둠을 뚫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 서치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깊은 원시림 속에서 동물들이 우짖는 소리를 들었다. 밤에 활동하는 악어와 박쥐와 새들도 보았다. 청명한 하늘과 고즈넉한 달빛이 어우러진 태고 적의 어둠과 원시림은 신비로웠다.

문제는 첫날밤부터 이어졌다. 밥은 캠프에서 준비해 준 것을 먹었고 미네랄워터도 미리 가져가 문제가 없었는데 몸을 씻기가 힘들었다. 더러운 강물을 받아서 샤워를 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거야 안 한다 하더라도 세면만은 미네랄워터로 해야 했고 뚫어진 모기장으로 모기가 들어와 모기약을 몸에 바르니 속이 어질어질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오전이 되자 서서히 습한 공기가 달궈지고 뜨거운 지열이 올라와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바람도 뚝 끊긴 상태였다. 해가 솟아오르자 온몸에 힘이 빠지고 계속 모기떼가 달려들었다. 말라리아 약은 먹고 있었지만 짜증이 났다. 막사 안이 시원한 것도 아니었고 악어가 있는 강물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갈 데도 없었고 할 일도 없었다.

오후 5시쯤 되자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져 조금 살 만해졌는데 밤이 되면서 몸이 덜덜 떨리며 설사가 나오고 토하기까지 했다. 말라리아에 걸린 것일까, 더위를 먹은 것일까? 불안했다. 설령 말라리아가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또 일사병도 심해지면 위험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1∼2주일 묵다 올 생각이었지만 2박을 하고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가 보니 다행히 말라리아는 아니었다.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사바주의 주도 코타키나발루 사내의 에어컨 바람이 감도는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도시인이란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낯선 정글은 인간이 살기 불편한 곳이다. 정글 속의 캠프도 물과 음식을 도시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 프랑스의 환경 철학자 오귀스탱 베르크는 에쿠멘이란 단어를 이용해 인간의 주거지와 도시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다.

“에쿠멘은 ‘주거지, 집’을 뜻하는데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부분을 말하며 생태학적인 조건과 함께 가치·윤리·상징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런 도시는 인간에게 모태와도 같은 에쿠멘이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에서 에쿠멘이 많이 파손되었다. 생태학적인 파손과 오염은 물론 가치·윤리·상징의 세계가 효율성·기능성·생산성이라는 가치 아래 무너졌다고 오귀스탱 베르크는 비판한다. 그는 도시를 무조건 비판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교조적인 자연 보호주의자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고, 거주지 중의 거주지인 도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까? 인간은 도시를 존중해야만 한다. 인간의 가장 살기 좋은 터전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자비한 도시 개발 계획은 생태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도시에 서린 역사·윤리 등의 상징적인 차원도 파괴한다. 또한 도시민들의 편안함과 욕망의 극대화는 농촌과 전 지구의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삶의 흔적과 문화가 담긴 도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터전이며 흥미로운 여행지임은 분명하다.

<여행작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