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악몽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전 가짜 세상이었다니? 21세기를 앞두고 개봉되어 엄청난 지적 충격을 줬던 SF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나는 즈음이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작동하는 거 같다, 진짜 같지 않은 이 현실은 대체 무엇일까’ 의심했던 상황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진짜 현실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노예로 사육되고 있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여겼던 세상은 가상현실의 거짓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내가 알았던 이 세상이 완전 가짜였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그 거짓이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왔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니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어딘가 이상했던 것에는 그 뒤에 다 그림자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지능을 헤아릴 수 없는 수상한 비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이 왜 저렇게 비문이 많을까? 연설비서관은 대체 뭐하는 거지? 최순실의 ‘빨간펜’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장관들에게 직접 대면 보고를 받지 않을까? 왜 서면 보고를 더 선호한다고 할까? 최순실의 사전 검토가 필요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가족을 멀리할까? 어려운 시절을 같이했던 동생들조차 만나지 않을까? 최순실 또는 최태민의 오래된 주문이 있었다는 설에 수긍이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나갔던 온갖 행사들이 떠오른다. 문화의 날 행사, 늘품체조 행사, 해외 한복 쇼, 해외 태권도 행사 등. 거기에는 최순실, 차은택,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저리 ‘문화융성’을 부르짖을까, 창조경제를 강조할까? 그 뒤에는 거대한 문화행사 사업이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드러나기로는 평창 동계올림픽마저 저들의 놀이마당이었다고 하고, 광주 아시아문화전당도 분탕질했다고 한다. 전국의 창조혁신센터들마저도 부실 재단들이라고 한다.

그것뿐인가? 박근혜정권의 석연찮은 깜짝 인사, 늑장 인사에도 배후가 있었다. 특혜가 있었고 반칙이 있었고 보복이 있었고 응징이 있었다. 장관급이나 청와대 수석급이나 대사급이나 기관장 급만이 아니다. 말단 과장급을 좌천시키다 못해 쫓아내는 데까지 대통령의 레이저 시선과 단말마 발언이 사용됐다. 대체 최순실을 얼마나 믿으면, 친구의 딸 정유라가 얼마나 귀하면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대기업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누르면 나오는 돈주머니였다. 과연 대기업들이 대통령이 내놓으란다고 순순히 몇 십억, 몇 백억을 내놓을 처지인가, 그럴 자들인가?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이제부터 서서히 밝혀질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우리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한다.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파란 알약을 선택하면 이 거대한 거짓을 적당히 묻어 버리고 내일 아침 일어날 것이다, 빨간 알약을 선택하면 이 가짜 세상의 거대한 거짓을 밝혀내고 누가 왜 그 거짓을 만들어 왔는지, 공범은 누구이고 주범은 누구인지 밝혀내는 고통스러운 진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매트릭스보다 더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이 왜 저러한 짓을 해 왔는지 전혀 납득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 최순실 일당에 대한 애착심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이른바 종교적 시사, 가족관계적 변수에 대한 설이 난무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 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더구나 어떻게 이 거짓의 세계가 최소 10년, 최대 40년을 유지되어 왔느냐 말이다. 그동안 난무하던 설, 주변 인물들의 증언, 주요 정치인들의 지적들이 어떻게 덮이고 묻히고 숨겨져 왔던 건가? 어떻게 대통령직의 기본은커녕, 국회의원직의 기본, 공인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대통령직까지 올렸던가?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권력이 저지른 온갖 추접한 행실을 숨겨 왔던가? 그 메커니즘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서 우리의 미래는 없다.

전대미문의 악몽이다. 진실을 파헤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헤어나지 못할 악몽이다!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