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해외여행 못지않게 국내 여행도 활발하며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볼 게 많고 다양하다. 특히 자연은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아름답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봄철에는 곳곳에서 꽃 잔치가 열리고, 여름에는 푸른 산과 계곡과 시원한 해변이 사람들을 부른다. 가을에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산과 겨울의 하얀 설경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환상적인 풍경이 된다.

그뿐인가, 우리의 긴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는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돌아보는 여행은 단순한 구경을 넘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과 배움의 행위다. 이처럼 국내 여행의 즐거움과 유익함은 매우 많다.

해외여행이 봇물처럼 터지던 199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공공기관에서 2004년 7월 1일부터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국내 여행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이때를 전후해 민간 기관에서도 토·일요일에 쉬게 됨으로써 여가 활동으로서의 국내 여행은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또한 자전거 여행, 캠핑 여행, 도보 여행 등 여행 방법에서도 많은 변화를 보여 왔다.

국내 여행은 해외여행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여정도 쉽게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어 문제도 없고 음식도 다양하고 풍성하며,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인해 잘 정비된 관광지를 편하게 관광할 수 있다. 가장 괄목할 만한 부분은 홍보다. 방송에서 수많은 여행 정보나 맛집을 소개하는 바람에 전국이 맛집 열풍이다. 어딜 가나 방송에 출연했다는 간판이 걸린 집들 앞에는 관광객이 줄을 서고, 인터넷 블로거들을 통해 소개된 맛집들을 여행자들이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보인다. 전국의 축제나 행사가 대개 비슷하다. 다른 점들도 물론 있지만 대개 축제 장터에서는 먹을 것과 술을 팔고, 어디 벽화 마을이 떴다 소문이 나면 흉내 낸 비슷한 벽화 마을이 곳곳에 생긴다. 또 음식에 전문적이지 않은 블로거들이 자기 나름대로 소개한 인터넷 정보에 의해 부정확한 맛집의 이미지가 계속 확산된다.

가끔 질 안 좋은 파워 블로거들은 기사화하는 대가를 음식점들에게 요구하고, 거절하면 악평을 올린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검증 안 된 맛집들은 막상 가서 먹어 보면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또 방송에 나가거나 인터넷에서 뜬 곳만 손님들이 몰려들어 주변 상권이 다 죽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가 부족한 아날로그 시대에는 여행자들이 현지인들에게 물어 가며 여행했고, 그렇게 알아내는 관광지, 맛집은 실패할 확률이 적었다. 현지인들의 평판에 의해서 검증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스컴과 인터넷이 큰 영향을 미치는 이 시대에는 여행은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라, 정보에 의해 생산된 궤도를 따라가는 행위가 된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려는 여행자들도 종종 보인다. 그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묻거나, 자기의 추억을 찾아가거나, 관심 분야를 쫒아가면서 자기만의 여행을 즐긴다. 자기가 태어난 곳, 다니던 초등학교, 놀던 곳, 외갓집 등 추억이 서린 곳은 자기만의 여행지가 된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수수한 마을이 오히려 푸근한 여행지가 되고, 맛집이 아니라 평범하고 한적한 음식점에서 우리는 더 여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여행자들은 음식을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분위기와 추억으로 먹는다. 지금, 여기서의 시간, 과거의 시간, 동네 사람, 햇살, 바람을 느끼면 평범한 곳에서도 희열을 누릴 수 있고,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 속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우연과 충동에 몸을 맡긴 채 여행하고, 장소를 초월해 추억과 상상의 세계로 가면 멋진 시간 여행이 펼쳐진다.

어차피 여행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지구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불쑥 이 세상에 던져져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변해 가는 풍경·사물·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만 보아도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디지털 시대, 정보가 많은 사회일수록 천천히. 추억과 상상을 넘나드는 여행은 우리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준다.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