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숙 인문지행 대표]‘순수한 마음’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들
2016년 10월 31일(월) 00:00 가가
순수한 마음, 전에는 이 말의 뜻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에 이 말이 전혀 다르게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평생 만날 일 없는 생면부지의 몇 사람 이름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나는 일이 계속되면서부터다. 이들 사이에서 ‘회장님’으로 알려진 인물은 국정에 종횡무진으로 개입하고 외동딸 성적을 위해서는 전통 있는 한 대학을 통으로 사유화하는 괴력을 보였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모든 일이 국정 최고 책임자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심도 없이 오로지 순수한 마음에서 잠깐 동안 의견을 물었다는 것이 이 엄청난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껏 들었던 ‘순수한 마음’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국정을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맡긴다는 것은 무슨 뜻일 수 있는가?
문제의 회장님 또한 국정의 구석구석을 자기 집 살림하듯이 휘저은 이유가 오랜 친분 관계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며 모두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항변한다. 이 또한 사심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돕자고 한 일이라는 의미다. 순수라는 것이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으며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니 순수한 마음은 일반적으로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이 ‘순수한 마음’이라는 말은 본래의 뜻대로 쓰기 어려운 특별한 의미의 개그가 되었다.
순수함이 구체적인 행위가 되면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 행위는 책임을 묻고 책임은 옳음과 그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가한 고통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한나 아렌트라는 독일 철학자는 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모습으로 행해진다고 했다.
아렌트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최고의 현대 철학자라고 불리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게서 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유대인인 아렌트는 독일의 교수가 될 수 없었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렌트는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전범자 법정에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으로 악명 높았던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했다. 이 경험으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나왔다. 악의 평범성은 인간의 악함이 얼마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일어나는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고 또한 근면하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다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한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자신이 열심히 명령에 복종한 것이 “도대체 왜 문제인가?”라고 물었다. 그에게 세상의 변화를 위한 특별한 이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주어진 일에 성실한 군인이었다. 그렇다고 아이히만이 흉악하고 냉혹하다거나 또는 정신이상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저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모범적인 장교라는 사실 앞에서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익숙하고 평범한 형태로 일어나는가를 깨달았다.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나는 악의 평범함은 곧 생각의 무능함이다. 그는 분명 어떤 개인적인 ‘사심’도 전혀 없는 근면하고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의 이웃이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히만의 악은 나치라는 광기 앞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포기하고 주어진 일만을 한 것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악의 평범성’을 적나라하게 경험한다. 자신에게 위임된 국가의 권력을 친구에게 마치 선물처럼 나누어 주는 그 ‘순수한 마음’에서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텅 빈 그런 순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권력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렌트는 생각의 무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생각을 포기하면 필연적으로 말하기의 무능함도 함께 온다. 그리고 말할 능력이 없음은 곧 판단의 무능함으로 이어진다. 이 ‘순수한 마음’이 다름 아닌 세 가지의 무능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무능함은 신의를 지키며 곁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은폐되고 이용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능과 악은 서로를 돌봐 주고 의지하면서 재생산된다. 생각과 판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공허하며 위험한 이유다.
악의 평범함은 결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악은 늘 우리에 곁에 가까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순수한 마음’을 주장하고, 생각과 판단을 포기하면서, 이 시대의 무능과 무력의 광기에 힘을 보태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참담함이 더 깊은지도 모른다.
지금껏 들었던 ‘순수한 마음’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국정을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맡긴다는 것은 무슨 뜻일 수 있는가?
문제의 회장님 또한 국정의 구석구석을 자기 집 살림하듯이 휘저은 이유가 오랜 친분 관계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며 모두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항변한다. 이 또한 사심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돕자고 한 일이라는 의미다. 순수라는 것이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으며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니 순수한 마음은 일반적으로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이 ‘순수한 마음’이라는 말은 본래의 뜻대로 쓰기 어려운 특별한 의미의 개그가 되었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렌트는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전범자 법정에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으로 악명 높았던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했다. 이 경험으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나왔다. 악의 평범성은 인간의 악함이 얼마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일어나는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고 또한 근면하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다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한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자신이 열심히 명령에 복종한 것이 “도대체 왜 문제인가?”라고 물었다. 그에게 세상의 변화를 위한 특별한 이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주어진 일에 성실한 군인이었다. 그렇다고 아이히만이 흉악하고 냉혹하다거나 또는 정신이상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저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모범적인 장교라는 사실 앞에서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익숙하고 평범한 형태로 일어나는가를 깨달았다.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나는 악의 평범함은 곧 생각의 무능함이다. 그는 분명 어떤 개인적인 ‘사심’도 전혀 없는 근면하고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의 이웃이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히만의 악은 나치라는 광기 앞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포기하고 주어진 일만을 한 것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악의 평범성’을 적나라하게 경험한다. 자신에게 위임된 국가의 권력을 친구에게 마치 선물처럼 나누어 주는 그 ‘순수한 마음’에서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텅 빈 그런 순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권력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렌트는 생각의 무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생각을 포기하면 필연적으로 말하기의 무능함도 함께 온다. 그리고 말할 능력이 없음은 곧 판단의 무능함으로 이어진다. 이 ‘순수한 마음’이 다름 아닌 세 가지의 무능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무능함은 신의를 지키며 곁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은폐되고 이용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능과 악은 서로를 돌봐 주고 의지하면서 재생산된다. 생각과 판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공허하며 위험한 이유다.
악의 평범함은 결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악은 늘 우리에 곁에 가까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순수한 마음’을 주장하고, 생각과 판단을 포기하면서, 이 시대의 무능과 무력의 광기에 힘을 보태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참담함이 더 깊은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