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도시에 사는 분들이 광주를 예향이라 부르고 시민들은 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좀 그렇다. 아시아문화전당까지 들어섰으니 앞으로 두고 볼 일이되 광주 인구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경남 통영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가 열리고 공연마다 매진이 되는 도시.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 등 항구이지만 내면의 문화가 충만한 도시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루부르 박물관에 가는 것은 소장된 예술품을 보러 가는 것이지 박물관 건물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여튼 예향 광주를 책 읽는 도시로 만들어보고자 교육청 특수시책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추진한 때가 있었다. 각 학교에 학부모독서회를 조직하여 시민들과 그 자녀들이 독서를 생활화하여 예향에 걸맞는 문화의 토대를 마련해 보기로 한 것인데 5천 여명의 학부모들이 각급 학교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국가나 한 도시 차원에서 시작된 독서 운동이 세계에 확산된 사례가 있고, 지금도 계속 되어 성과를 거둔 지자체가 많다.

‘북 스타트 운동’은 1992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유아 책읽기 운동이고, 1988년 일본 한 여고에서 시작된 ‘아침 독서 운동’은 일본의 수많은 학교로 퍼졌는데 아침 10분 독서가 생활화되어 많은 학생들의 삶을 바꾸었다고 한다. 아침 독서의 4가지 지침은 ‘모두가, 매일, 좋아하는 책을, 단지 읽기만 한다.’이다. 부담을 주지 않고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다.

2001년 미국 시카고에 갔을 때 ‘한 책 한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시카고 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지역 인사들이 각 학교에 명예독서회원으로 가입하여 학교 독서토론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 결정된 책이 ‘앵무새 죽이기’인데 이 정책도 세계적인 독서운동으로 확산 중이다.

시교육청에서 독서교육의 실무를 맡았던 나는 300여명의 광주 학부모독서회장들에게 두 분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와 언론인 홍세화 교수.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등 과학, 환경, 인문학 관련 40여권의 저자인 최 교수는 ‘부계 중심의 호주제는 자연 법칙을 거스른 것’이라 단언하여 남성 호주제에 마침표를 찍게 한 분이다. 저녁에는 자녀를 돌봐야 한다면서 저녁 회식 대신 점심을 먹으면서 회의를 하자고 제안하여 서울대 회식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언론인, 사회운동가인 홍 교수는 ‘남민전’ 활동으로 프랑스로 망명을 가게 되었는데 이국땅 파리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면서 겪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대표적인 저서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을 싫어하지만 당신을 싫어하진 않겠다.’는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 문화를 소개하면서 우리의 정(情) 문화도 혈연, 학연, 지연에만 묶이지 않는다면 아주 소중한 문화라고 말한 분이다.

어렵게 마련한 세미나에 욕심이 생겨 두 분을 다 모시고 싶었으나 워낙 바쁜 분들이어서 강사로 모시기도 힘들었지만 같은 날 일정을 잡기는 더욱 어려웠다. 겨우 허락을 받았는데 최재천 교수가 문제였다. 저녁 7시까지는 서울 자택에 도착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저녁 7시부터 아들보육과 가사는 그의 담당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공항에 차를 대기하는 등 세심한 준비로 무사히 세미나를 마치고 약속을 지킬 수 있었는데 강의는 예상을 훨씬 빗나갔다. 어떻게 하면 학부모 독서회원들이 더 많은 책을 읽고, 자녀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고 등등의 비법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90분 강의 중 80분을 동물생태학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재미는 있었다. 근데 독서는?

겨우 10여분 남겨두고 독서에 대해 말했다. 저녁 7시부터 아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재우는 일을 도맡는데 3살 되기 전부터 밤마다 책을 읽어 주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하도 피곤해서 책을 읽어주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책을 거꾸로 들고 읽고 있더라는 것이다.(많은 분들이 경험하지만) 잘 때는 이부자리를 챙겨주고 꼭 포옹 한번 하고 자게 하는데 문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책에 더욱 재미를 붙여 몇 권씩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읽겠다고 고집하여 두 권만 또는 세 권만 등 밤마다 타협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부모 독서회원 여러분! 책 읽는데 좋은 방법이 없어요. TV 끄고, 엄마 아빠 먼저 책 읽고 있으면 아들딸도 읽어요.’가 끝이었다. 홈런 한방이었다.

이러저러 사례를 들었지만 개인이나 기관이나 실천이 관건이다. 26개월 된 손주 윤서가 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는 꽃밭에다 재우고요, 다른 아가는 개똥밭에 재운다네, 자장자장’. 내용은 좀 그렇지만 내가 어릴 때 듣고 잠든 자장가여서 윤서를 재울 때마다 불러주었는데 어느 날 밤 몇 번 뒤척이더니 ‘꼬바테다’를 불러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자장자장 말이냐’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저 듣다가 잠이 든 줄만 알았는데 다 기억하고 있었다.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진 것은 거짓말 때문이고,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만들었다는 것까지 알게 된 손주 윤서 때문에 우리 집 TV는 이제 꺼야할 때가 되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