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비가 무료이며 병원비도 무료인 나라. 전 국토가 금연지대로 담배를 피우면 징역을 살아야 하는 나라. 1999년에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국이 설립된 나라. 관리들은 전통 복장인 ‘고’(남자)와 ‘키라’(여자)를 입어야 하고 매달 한 번씩 전통 축제를 벌이며 민족문화를 고취시키는 나라. 현재 국민소득 약 3천 달러도 안 되지만 유럽의 신경제 재단(NEF)의 2010년도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뽑힌 나라.

바로 그 나라인 부탄을 두 달 전에 5박 6일 동안 여행했다.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약 3주일간 인도의 시킴 지방과 함께 여행했는데, 대개의 도시가 해발 2천∼3천 미터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인도 뉴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박도그라로 간 뒤, 지프 차를 타고 1박 2일 동안 국경 도시 푼촐링을 거쳐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부탄은 이상향일까? 여행자들이 쓴 여행기와 매스컴에 보도된 부탄은 세계의 흐름과 거리가 먼 지상낙원처럼 묘사되기 일쑤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부탄은 그랬다. 하지만 현재의 부탄은 세계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부탄이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부탄의 첫 인상은 청결과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어딜 가나 법에 의해 규제된 5층 미만의 건물들은 하얀 벽과 정교한 장식으로 아름다웠고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단정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수도 팀푸와 과거의 전통이 어린 푸나카, 국제공항이 있는 파로 그리고 봅지카 계곡 등은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통해 가야 했지만, 히말라야 산맥과 들판은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공기는 얼마나 깨끗한지 가는 곳마다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스위스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한 독특한 부탄 식의 불교 사원과 문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부탄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는 17세기다. 종교 지도자인 샤브드룽 나왕 남걀이 모국인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부탄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한때 전성기를 맞았지만 차차 분열되다가 20세기 초에 왕정을 확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의 도움을 받는다.

1대 왕은 영국과의 협력 하에, 2대 왕은 인도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나라의 기틀을 잡고 3대 왕 지그메 도르지 왕축(1929-1972)은 영국과 인도를 제외한 나라들과는 거리를 두는 쇄국 정책을 취하지만 농노제를 폐기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며, 입법기관·경찰·군대 등을 만들며 근대화를 이룩한다. 정치를 잘해 나가던 3대 왕이 40대 중반에 갑자기 세상을 뜨자 그의 젊은 아들 지그메 싱게 왕축(1972년-현재)이 4대 왕이 된다.

그가 내세운 것은 발전이 아닌 ‘국민 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개념이었다. 국민 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혹은 국내 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 국민 총행복을 증진시키기는 정책을 취한다.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 경제의 발전, 히말라야 자연환경 보호, 부탄의 유형·무형 문화재의 보호, 좋은 통치 등 4대 정책을 헌법에 명시하고, 국민 총행복 위원회(Gross National Happiness Comission)를 만들어서 모든 국가 정책과 민간 분야의 사업들은 이 위원회의 검토를 거치게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부탄은 전 국토 녹지율이 68%로 어딜 가나 푸르고, 부탄 인구의 90%인 농민이 자급자족하며, 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국내에서 쓰고 남은 85%를 인도에 수출한다. 또한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1인당 하루 체류비 200달러에서 250달러를 받음으로써 관광객 수를 조절하여 오염을 방지하고 있다.

그런데 2008년, 4대 왕은 아들 5대 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 민주화를 이루는 한편 입헌군주국을 만드는 개혁 정책을 취한다. 하지만 이런 물결 속에서도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가 생기고 이혼율·실업률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닌 행복이란 개념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부탄은 이 지구상에서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나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