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말이 많은 세상이라 말에 대해 재밌는 한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옛날 매주 학교 운동장 조회는 참 힘들었다. 추운 날이나 바람 부는 날도 빠짐이 없었다.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도 고통이었지만 용의 검사도 그에 못지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때 검사의 추억. 겨울철 잘 씻지 않은 손등에 때가 쌓여 트고 피가 삣줌하는데 이곳에 닿는 매는 매서웠다. 훈화를 너무 오래 하니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서 있던 자리가 뽁작하니 녹아 두 발 크기의 물자리가 생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운동장 조회를 어떻게 견뎠는지 한숨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다.

어느 바람이 세찬 날 운동장 조회가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뜻깊은 교훈을 빠짐없이 전달하고자 준비해온 원고를 힘주어 읽었다. 두 손까지 들어가며 한참을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연단에 놓아둔 원고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때 읽었던 원고 대목이 ‘돌이켜보면’이었다.

‘돌이켜보면’ 하고서 다음 원고를 읽으려는데 바람에 휙 날아가버린 것이다. 난감한 순간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주춤하다가 교장선생님답게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제 원고 없이 ‘우리가 굳이 돌이켜볼 필요도 없지만’ 하면서 다음 말을 이어가려는데 마침 연단 바로 밑에 있던 선생님이 잽싸게 원고를 주워왔다. 또다시 난처한 순간이 흐르게 되었다. 다시 연설 원본이 연단에 놓이게 되자 이번에는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아니 돌이켜볼 수도 없으니?’ 하면서 그날 조회를 마쳤다는 것이다.

돌이켰는지 안 돌이켰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로되 이처럼 남이 써준 원고를 읽다가 난처한 경우가 많다. 똑같은 자리에서 어떤 내빈 축사는 ‘백 사십 오만 광주시민과 더불어’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다음에 격려사를 하는 분은 ‘백 오십만 광주시민과 함께’라고 말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금은 자료도 많아 그렇지 않지만 교지나 매년 반복되는 행사글을 국어과 선생님께 부탁하게 되는데 기일에 쫓겨 예전 원고를 날짜 등 몇 군데만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가 행사 당일과 계절이나 날씨, 꽃 등이 맞지 않아 민망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링컨과 처칠은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못생긴 얼굴이 공통이고,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과 수상을 지낸 것도 같다. 거듭된 실패와 짧은 명 연설문도 그렇다. 처칠은 옥스퍼드 대학 수많은 청중 앞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단 3번의 반복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또다른 말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한참 후에 처칠이 연단을 내려가자 그때야 연설이 끝난 줄 알고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그 내용과 함께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후세에 회자되고 있다. 게티즈버그 주민들은 남부군에 우호적이었고, 링컨 대통령을 그렇게 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몰용사 추도식의 주된 관심은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에 모아졌고 그는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명연설가답게 2시간 동안 열변을 쏟아냈다고 한다. 청중들은 얼마나 지루했고 그 다음 연단에 오른 링컨은 어떠했겠는가. 오늘날 에버렛의 2시간 긴긴 연설은 간 데 없고 링컨의 2분은 남아 있다. 우리가 남 앞에 서서 말할 때나 연단에 오를 때 항상 떠올릴 실화가 아닌가. 오죽하면 ‘연설하고 있네’라는 비꼬는 말이 나왔겠는가.

간혹 무슨 단체나 어디에서 강사를 모실 때가 있다. 강사의 이야기가 재미없는 줄은 모르고 학생들만 떠든다고 한다. 본인 강의 알맹이 없는 줄 모르고 듣는 태도가 좋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강의 지루한 줄 모르고 끝까지 아니 시간 지나서까지 한다. 정치하는 분들이 현실은 모르고 애먼 소리 하면서 정치를 불신한다고 한다.

잔소리란 좋은 뜻의 말을 듣기 싫게 하는 말이라고 정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잔소리란 별로 의미 없는 말을 잘게 썰어서 길게 늘어놓는 말이다. 이 잔소리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잘 모르겠으면 자신의 말을 한번 녹음해 놓고 다시 틀어보면 된다. 정나미 삼천리 떨어질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