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추석 명절의 사회학적 풍경
2016년 09월 22일(목) 00:00 가가
추석 연휴를 지내고 나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추석 명절 잘 보내셨어요?”라는 인사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네, 뭐, 잘 보냈습니다!”라고 답하지만 얼굴 표정은 개운하지가 않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추석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즐거운 축제의 날이다. 서로 흩어져 살던 가족 구성원들이 큰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덕담을 나누는 날이 추석이다. 그날의 가족 행사를 위해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교통 혼잡을 감수하며 한 자리에 모인다.
각 가정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명절의 가족 모임은 3세대 또는 4세대가 만나는 자리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아버지 어머니 세대, 아들과 딸 세대, 손자와 손녀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속에는 한국 사회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겪은 사회변동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노력했던 세대,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세대, 풍요를 누린다고 하지만 미래가 암울한 세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 온 여러 세대가 모였을 때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먼저 같은 말을 쓰지만 서로 간에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 거리를 두거나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와 달리 서로 다른 세대의 구성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도 있다. 물론 두 번째 모습이 바람직하지만 첫 번째 경우가 더 빈번하다.
세대 간의 차이에다 남녀 간의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에 며느리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추석은 명절이 아니라 ‘고행’의 날이다. 세대와 남녀 차이만이 아니라 계층 간의 차이도 있다. 한 가족 내에 큰아들은 잘 사는데 막내아들은 가난한 경우가 있고, 외국 유학을 한 조카가 있는가 하면 학번이 없는 조카도 있으며, 서울의 부촌에 사는 고모가 있는가 하면 전라도 농촌에 사는 삼촌도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요란한 사회변동의 결과 교육수준, 소득수준, 소비수준이 각기 달라져서 그것이 가족들 사이의 잠재적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보게 되고 거기에 시기심과 질투, 무시와 멸시의 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같은 부모 밑에서 한솥밥을 먹고 자랐지만 각기 흩어져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는 어렵다. 일단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서먹서먹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경험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치게 된다. 대체로 참고 넘어가지만 때로 마음속에 앙금이 남기도 한다. 조그만 일을 꼬투리 삼아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추석날 가족 모임에서 한국사회의 풍경을 읽을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경험하였고 그런 변화의 와중에서 ‘성공’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으며 지금은 ‘금수저’와 ‘흙수저’가 거의 결정된 상태다. 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삶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물질적 생활수준이 달라지면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일상의 생활이 달라지면 인생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남녀평등 사상이 퍼지면서 가부장제가 흔들리고, 개인의 욕구와 자아실현이 강조되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부부 사이의 갈등, 형제자매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한 가족 안에서 조부모-부모-자식 세대로 이어지면서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현격하게 달라진 경우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소작농이었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아버지가 도시로 나가 사업에 성공했고,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의 간부 사원이고, 손자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 교수인 어떤 가족의 경우, 세대 간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생긴다.
형제자매들 사이에도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다를 경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상태가 지속된다. 불통은 긴장과 거리감을 낳고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세대 간 사회 이동의 양이 크면 클수록, 세대 내 계층 분화가 심하면 심할수록, 몰이해와 갈등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생존’이 삶의 가장 근원적인 목표였던 구세대가 ‘자아실현’ 이라는 목표를 가진 신세대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절박했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나 ‘취향’ 같은 말들은 공허한 사치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함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추석은 지나갔다. 몇 달 지나면 설 연휴가 찾아올 것이다. 설 연휴에는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며 대화와 소통이 증진되는 이야기 마당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사회학자·작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추석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즐거운 축제의 날이다. 서로 흩어져 살던 가족 구성원들이 큰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덕담을 나누는 날이 추석이다. 그날의 가족 행사를 위해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교통 혼잡을 감수하며 한 자리에 모인다.
그래서 때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보게 되고 거기에 시기심과 질투, 무시와 멸시의 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같은 부모 밑에서 한솥밥을 먹고 자랐지만 각기 흩어져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는 어렵다. 일단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서먹서먹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경험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치게 된다. 대체로 참고 넘어가지만 때로 마음속에 앙금이 남기도 한다. 조그만 일을 꼬투리 삼아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추석날 가족 모임에서 한국사회의 풍경을 읽을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경험하였고 그런 변화의 와중에서 ‘성공’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으며 지금은 ‘금수저’와 ‘흙수저’가 거의 결정된 상태다. 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삶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물질적 생활수준이 달라지면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일상의 생활이 달라지면 인생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남녀평등 사상이 퍼지면서 가부장제가 흔들리고, 개인의 욕구와 자아실현이 강조되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부부 사이의 갈등, 형제자매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한 가족 안에서 조부모-부모-자식 세대로 이어지면서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현격하게 달라진 경우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소작농이었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아버지가 도시로 나가 사업에 성공했고,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의 간부 사원이고, 손자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 교수인 어떤 가족의 경우, 세대 간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생긴다.
형제자매들 사이에도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다를 경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상태가 지속된다. 불통은 긴장과 거리감을 낳고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세대 간 사회 이동의 양이 크면 클수록, 세대 내 계층 분화가 심하면 심할수록, 몰이해와 갈등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생존’이 삶의 가장 근원적인 목표였던 구세대가 ‘자아실현’ 이라는 목표를 가진 신세대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절박했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나 ‘취향’ 같은 말들은 공허한 사치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함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추석은 지나갔다. 몇 달 지나면 설 연휴가 찾아올 것이다. 설 연휴에는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며 대화와 소통이 증진되는 이야기 마당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사회학자·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