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본격적인 해외 여행기는 여행가 김찬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세계일주 여행을 한 지리학자 김찬삼(1926∼2003)은 30여 년에 걸쳐 선구적인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개인적인 여행 이야기와 함께 낯선 나라의 지리, 역사, 문화를 담백한 문체로 소개함으로써 가난했던 시절 국민들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 주고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의 여행기는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의 여행기들은 배낭여행자들의 무용담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여행에 필요한 정보들 즉 숙소, 교통, 돈 적게 쓰고 많은 나라 여행하기 등의 요령이 많이 다루어졌다.

뒤이어 여행 가이드북과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여행기에는 정보보다 개인의 경험과 감상들이 많이 담겨졌고 시간이 가면서 분업화·전문화 되었다. 문학적 향기가 담긴 여행기, 특별한 주제를 다룬 문화 탐사기, 테마 여행기, 오지 여행기 등에는 깊은 지식, 특별한 체험들이 담기고 여행 전문가, 학자, 예술가 등이 저자로 활동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행기를 출판하기가 점점 힘들어진 일반 여행자들은 요즘에 블로그, 페이스북, 전자 출판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발표하고 스스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런 독립출판물들만 판매하는 서점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이처럼 해외여행이 시작된 지 28년 째 되는 현재, 여행기와 사회 상황은 계속 변해 왔다.

여행기가 발전하면서 논란도 생겼다. 예전에는 과장된 미화, 거짓말이 섞인 허풍스러운 여행기도 사람들이 믿어 주었다. 누구나 갈 수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글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한다. 그들은 과거처럼 여행기를 그대로 믿지 않고 직접 책과 자신의 경험을 비교하며 비판한다. 또 진솔한 체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터넷의 정보, 경험들을 각색하거나 편집해서 책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틀림없이 논란거리가 된다.

그럼 여행기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솔직하게만 쓰면 될까?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언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없다. 언어는 개념과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소통하는 기호이지 현실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글은 지면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쓸 수 없다.

우리의 뇌는 현실을 각자의 가치관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글로 옮길 때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편집해서 표현한다. 즉 현실이 기억을 통해 언어로 나오는 과정에서 끝없는 ‘편집 과정’이 발생한다.

편집이란 과도한 포장이나 거짓말로 꾸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관, 취향, 글을 쓰는 의도, 기분에 따라 기억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관적인 여행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과 정보를 전하는 가이드북도 그러하며, 공정한 사실을 전달한다는 뉴스 기사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언어로 발표된 모든 것들은 그런 한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여행기는 현실이 담긴 객관적인 글이 아니라 쓰는 이의 의도나 감정만 담긴 주관적인 글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여행기는 객관적인 현실이 담긴 논픽션인 동시에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이 섞인 글이다. 여행기를 쓸 때 언어의 속성에서 발생하는 굴절 현상, 현실과 인식 사이의 거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함부로 섞어서 쓴 멋지고 재미있는 글은 피해야 한다.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현실로 믿고 착각하기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행기 저자들이 자기 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결국 진정성 있는 여행기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그건 불가능하고), 언어의 속성에서 오는 굴절 현상을 고민하면서, 진실에 대해 접근하려는 고민, 독자에 대한 배려, 올바른 의도를 갖고 쓰는 주관과 객관 사이의 글이 아닐까? 여행기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남의 나라의 현실과 자기의 주관성, 언어의 속성에서 오는 거리를 어떻게 극복할까에 대한 고민이 늘 뒤따르기 때문이다.

<여행작가>